한국 투자자들이 잠든 사이 마감된 미국 뉴욕 증시(한국시간 6일)가 기술주를 중심으로 일제히 요동쳤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장 대비 5.52% 내린 24,315.00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세운 신고가 대비 10% 하락하는 조정장(코렉션) 기준선을 하루 만에 넘어선 것이다. 대표지수 S&P500은 4.36% 빠진 7,353.73,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833.06포인트(-3.44%) 하락한 51,523.06에 장을 닫았다. S&P500과 나스닥의 일간 낙폭은 2025년 4월 관세 충격 이후 가장 컸다.
하루 만에 2조 달러 증발…나스닥 200일선 붕괴
나스닥100지수는 6% 넘게 무너지면서 소속 기업 시가총액 2조3,000억 달러가 하루아침에 증발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패닉 이후 가장 나쁜 하루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날 오른 선거 랠리 상승분을 개장 6분 만에 모두 지웠고, 4월 이후 처음으로 200일 이동평균선 아래로 떨어졌다. 엔비디아·AMD·마이크론 등 개별 기술주도 잇달아 200일선을 깼다.
시장 공포지수 VIX는 하루 만에 65% 이상 치솟아 장중 28선을 넘봤다. 2년 넘게 만에 가장 큰 일간 점프다. S&P500은 11개 섹터 전체가 하락했고, 정보기술(IT)이 6.6% 안팎 하락으로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임의소비재와 산업재도 4%대 하락했다. 다우는 중간선거 다음날 두 세션 연속 성과 기준으로 1896년 이래 최악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급락한 뉴욕 증시의 무대인 뉴욕증권거래소(NYSE) 건물 전경 / 출처: PhotoEverywhere반도체 와이프아웃…AMD·마이크론 15%대 폭락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2%대 급락했다. 아이셰어즈 반도체 ETF(SOXX)도 11% 안팎 빠지면서 구성종목 전체가 6% 이상 하락했다. AMD와 마이크론은 15% 안팎 폭락했고, 엔비디아는 8% 하락했다. 암홀딩스와 퀄컴은 각각 12%, 10% 내외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실적 전망을 내놓은 퀄컴과 암홀딩스가 폭락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팔란티어와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등 AI 소프트웨어 강자들도 10% 이상 빠졌다. 팔란티어는 시가총액 약 400억 달러가 증발하며 2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는 민주당 의회 장악이 두 회사 합병 절차와 데이터센터 구축에 규제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9% 이상 하락했다. '매그니피센트7'의 시가총액은 마감 무렵 하루에 약 9,000억 달러가 줄었다. 엔비디아만 3,740억 달러가 빠졌다.
"시장은 때때로 단기적인 시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지평선 너머에서는 AI가 삶과 비즈니스의 모든 측면에서 더욱 필수가 된다. 나는 이 수요를 믿는다" — AMD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
급락하는 주가 흐름을 상징하는 시세 차트 화면 / 출처: PickPik 폭락의 배후…민주당 완승 뒤 'AI 규제' 공포
이번 폭락의 직접적 방아쇠는 미국 정치다.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주도권을 확보하고 상원 다수당 지위도 되찾으며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선거 다음 날인 4일에는 유가 급락과 국채 금리 하락을 계기로 다우가 3.03% 급등하며 환호가 이어졌지만, AI·데이터센터주는 첫날부터 상승 행렬에서 빠져 있었다.
투자자들은 민주당 의회가 AI 산업과 데이터센터 건설을 규제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량 이탈에 나섰다. 찰스 슈왭 정책분석가 마이클 타운센드는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이 이번 선거의 최대 패자라며, 건설 속도 둔화와 함께 전력·수도·인프라 비용을 기업에 전가하는 요구 가능성을 지목했다. 여기에 헤지펀드의 올해 수익 잠금 움직임이 겹쳤다. 노무라 크로스에셋 전략가 찰리 맥엘리곳은 "그들은 '장군들'을 쏘고 있다"며 올해 인기 테마주의 매도가 한 달 넘게 '극도로 급격하게' 진행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램 리서치는 한 달간 36%,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는 30% 하락했다.
개인투자자들도 물타기 대신 대량 매도에 나섰다. 반다 리서치 집계 기준 개인투자자의 개별주 순매도액은 장중 3억5,800만 달러로 2020년 3월 이후 최대 규모였다. 비라지 파텔 반다 리서치 글로벌 매크로 전략가는 "이는 개인투자자들의 총체적 항복(total capitulation)이라 불릴 만한 국면"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강세장의 상징으로 불리는 차징불 동상 / 출처: Flickr(incognito7nyc)위험회피 심리는 안전자산으로 향했다. 12월 인도 금 선물은 장중 온스당 4,155.80달러를 기록하며 10월 22일 이후 최고 수준을, 은은 53.49달러로 10월 29일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금은 이번 주 5%대 상승으로 8월 이후 가장 큰 주간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4.8%대 중반으로 내려왔다. 유가는 전날 이란 전쟁 종결 기대로 급락했던 반동으로 반등해 브렌트유가 배럴당 98달러, 미국산(WTI)은 90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JD 밴스 부통령이 "우리가 선거에서 진 이유는 전쟁"이라고 쓰면서 종결 기대가 선행된 것이다. 비트코인은 순간 7만6,000달러선이 깨졌다. 지난주 63억 달러 규모 바이낸스 해킹 여파와 규제 불확실성이 겹친 결과다.
오늘 밤 고용지표…12월 금리 인상 확률은 70%
거시 지표는 의외로 탄탄했다.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18만9,000건으로 시장 예상(19만7,000건)을 밑돌았고, 1969년 이후 최저 수준을 이어갔다. 3분기 노동생산성은 연율 3.6%로 예상(2.9%)을 크게 웃돌았고, 단위노동비는 0.7% 감소했다. 강한 생산성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현재 3.75~4.00%로 유지 중이며, 케빈 워쇼 의장 체제에서 12월 9일 회의의 0.25%p 인상 확률이 선물시장에 70.1%로 반영돼 있다. 증시 폭락은 연준의 금리 인상 부담을 다소 덜어주는 측면이 있다. 전날 82.7%였던 인상 확률이 낮아진 것이다. 오늘 밤(한국시간 6일 밤 10시 30분) 발표되는 10월 고용지표가 다음 방향을 가를 최대 변수로 꼽힌다. 신규 고용은 6만5,000건, 실업률은 4.2% 동결이 예상된다.
"노동시장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다만 금리 동결 지속은 훨씬 약한 고용보고서가 전제돼야 한다" — 리즈 앤 소더스 찰스 슈왭 금융센터 최고투자전략가
다음 주에는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가 있고, 12월 11일 정부자금 시한을 앞두고 셧다운 리스크도 떠오르고 있다. 시장은 AI 과열 해소 국면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민주당 의회가 데이터센터 규제에 나설지에 따라 방향을 다시 잡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