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감소가 고등교육의 토대를 흔들면서 지방대학의 통폐합 논의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경영위기 사립대의 회생과 폐교 절차를 담은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 8월 15일 시행됐고, 교육부는 학과 통폐합과 정원 감축에 나서는 지방 사립대에 집중 지원하는 사업 시안을 발표했다. 살릴 대학과 정리할 대학을 가리는 기준이 마련되는 가운데 지역 고등교육 인프라를 지키는 방안이 새 과제로 떠올랐다.
학생이 없어 비어 있는 대학 강의실. 학령인구 감소가 누적되면서 지방대학의 미충원이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 출처: Public Domain Pictures학령인구가 대학 정원을 밑돌기 시작했다
전환점은 2021년이다. 이 해를 기점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령인구가 전국 대학의 입학정원을 밑돌기 시작한 것으로 정리된다. 법제처가 밝힌 제정 이유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사립대학의 미충원 인원은 2만9535명에 달했고,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도 2021년 기준 53.5%에 이르렀다. 학생 수가 곧 재정인 구조라는 뜻이다.
지역 간 격차는 더 뚜렷하다. 2021년 대학 신입생 충원율은 전체 94.9%였으나 수도권은 99.2%를 유지한 반면 지방대학은 92.3%로 10년 전보다 6.8%포인트나 낮아졌다. 같은 해 지방대학 입학정원이 약 29만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충원 규모는 개별 대학의 운영을 넘어 지역 고등교육 체계의 존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대학 간 통합의 경험도 이미 적지 않게 쌓였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공공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0년부터 올해까지 확인된 대학 통폐합은 총 37건, 관련 대학은 75곳에 이른다. 통폐합은 두 대학이 하나로 합쳐지는 형태와 기존 캠퍼스를 유지한 채 본교·제2캠퍼스로 남는 형태로 나뉘며, 후자는 국공립과 비수도권 대학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폐교와 회생의 절차, 이번에는 법에 담겼다
지난 8월 15일 시행된 사립대 구조개선법의 핵심은 대학이 사실상 한계에 이른 뒤에야 문을 닫던 종전의 절차를 앞당겨 진단하도록 바꾼 것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매년 사립대 재정진단을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 실태조사를 거쳐 '경영위기대학'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지정 대학에는 재무구조 개선과 학부·학과 통폐합, 대학 간 통폐합, 폐교 또는 학교법인 해산까지를 담은 구조개선 이행계획 제출이 요구된다.
회생을 시도하는 대학에는 규제 특례가 주어진다. 적립금 사용 목적과 보유자산 처분, 시설·정원 등에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고,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거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면 교육부장관의 구조개선명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폐교가 확정되면 학생은 편입학을 지원받고, 법인에는 잔여재산 범위에서 해산정리금이 지급된다. 다만 배임·횡령 등 중대한 비리에 연루된 관계자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관련 규정은 2035년 12월까지 한시 적용된다.
제도를 두고 평가는 갈린다. 재정 위기 대학의 체계적인 정상화와 퇴로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해산정리금이 자칫 폐교를 앞당기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육계 일부에서 제기됐다. 잔여재산의 공공적 성격을 감안할 때 법인에 돌아가는 재산 규모와 조건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교육부 '학과 빅딜'…15개 대학에 연 50억원
정부는 통폐합을 지원 사업의 형태로도 설계했다. 교육부는 지난 6월 17일 '2026년 지방대학 특성화 선도대학 육성사업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하고, 올해 850억원을 투입해 학과 통폐합과 정원 감축을 추진하는 비수도권 사립대 15개 내외를 선정, 연간 50억원씩 최대 5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선정 대학은 2030학년도까지 특성화 분야 중심으로 학과 구조를 개편하고 입학정원을 3% 이상 감축해야 하며, 대학 간 역할·기능 조정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감축 기준이 2%로 완화된다.
규제 완화도 함께한다. 교원 공개채용 예외 적용과 교원 정년 완화, 기자재 교환과 협동수업, 공동교육과정과 학위 인정 등이 인센티브로 마련됐다. 지원 대상은 대학혁신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비수도권 사립대로, 글로컬대학은 제외된다.
"학령인구 감소는 가까운 시일 내 고등교육체계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지방사립대학이 지역주도 성장의 기반이 되고 고등교육 혁신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 최교진 교육부장관, 교육부 보도자료
대학 캠퍼스 전경. 학과 통폐합과 정원 감축을 추진하는 대학에 집중 지원이 이뤄진다 / 출처: PxHere통폐합 효과는 제한적…'내실'이 남은 과제
다만 통폐합이 곧 해법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브리프 분석에서 통폐합 직후 입학경쟁률과 신입생 충원율, 외국인 유학생 수 등 경쟁력 지표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통폐합 직후 감소했던 비전임교원 수와 학과 수는 이후 다시 증가하는 재팽창 현상이 확인됐다. 캠퍼스를 유지하는 형태의 통폐합, 즉 국공립대학 중심의 유형에서는 구조조정 효과가 단기적으로도 미미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분석을 이끈 측은 대학 수 감축 자체보다 통폐합 이후의 내실 있는 운영과 특성화를 통한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되, 적정 정원 산정, 중복 학과 정비, 재정·자산 통합 등을 지속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통폐합을 검토하는 대학과 지자체가 캠퍼스별 역할 재구성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정 지원의 형평, 국립대와 사립대 사이
재정 지원의 형평성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교육부는 2027학년도부터 지역 대학 진학생을 위한 장학금 도입을 검토하면서 지방 국립대 30곳의 신입생부터 등록금 전액 또는 이에 준하는 수준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나, 지원 대상과 금액, 재원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등록금이 비수도권 사립대의 절반 수준인 국립대에 지원이 집중되면 지역 사립대 모집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장학금을 대학의 설립 유형이 아닌 학생과 지역을 기준으로 설계하고 지역 사립대 학생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회생과 폐교를 다루는 법이 시행되는 상황에서 국·사립을 아우르는 지역 고등교육 재정지원 원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텅 빈 교실의 책상들. 폐교가 현실 과제로 다가오면서 캠퍼스의 후속 활용 방안도 논의된다 / 출처: Pixnio대학이 사라진 자리에 지역이 남는다
폐교의 파장은 캠퍼스 안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학이 일자리와 소비, 연구 기반을 견인해 온 만큼 폐교 이후 주변 상권 축소와 청년 유출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폐교로 면직되는 교직원에 대한 보상과 학생 편입학 지원은 법에 담겼지만, 빈 캠퍼스를 지역 인프라로 되살리는 방안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결국 핵심은 대학 수를 줄이는 것 자체가 아니라, 줄어드는 학령인구 속에서 지역마다 최소한의 고등교육 기능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회생과 폐교의 절차를 법으로 정리한 사립대 구조개선법, 통폐합 대학에 집중 지원하는 지방대 특성화 사업이 그 질문에 실질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시행 과정이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