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개발사 앤트로픽의 나스닥 상장이 예정된 일정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가 글로벌 증시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투자자 설명회(로드쇼) 개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기관 투자자들이 몸값과 시장 분위기를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AI 관련 자산 매도세가 이어지며 뉴욕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 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공공영역 아카이브 로드쇼 일주일 앞, 투자자들은 '값'부터 따진다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앤트로픽은 11월 9일이 포함된 주에 로드쇼를 열고, 이르면 11월 16일이 포함된 주에 나스닥에서 첫 거래를 시작하는 일정을 추진해 왔다. 상장 종목코드는 'ANT'다. 회사는 10월 26일 증권신고서(S-1)를 공개했고, 11월 2일에는 3분기 실적을 담은 수정 신고서를 제출하며 상장 채비를 마무리하는 듯했다.
변수는 수요 쪽에서 생겼다. 투자자들과의 논의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상장 전 기업가치로 거론되는 1조5000억달러가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상단에 가깝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비상장 시장의 밸류에이션 상승을 감안해도, 공모 단계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일부 투자자는 확약을 받아내기 위해 더 큰 폭의 할인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앤트로픽이 자금을 급히 필요로 하는 회사라는 점도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분기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AI 인프라를 짓는 과정에서 협력사들과 맺은 지출 약정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르는 만큼 외부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여기에 투자자들이 10월 매출치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회사가 수정 신고서에 10월 매출 항목을 공란으로 남겨두면서, 최근 둔화된 성장세가 다시 살아났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기술주에 대한 사실상의 매수자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팔 사람은 많은데 받아줄 사람이 없는 장세"라는 진단이 월가에서 나온다.
트루이스트 어드바이저리 서비스의 키스 러너 최고투자책임자는 최근 시장 상황을 "기술주 매수자 파업(buyers' strike)"에 비유하면서도, 매도세 자체는 이례적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다는 전언이다.
중간선거가 드러낸 'AI 피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며 데이터센터 규제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 출처: Carol M. Highsmith, PICRYL 공공영역 3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는 AI 산업의 정치적 환경이 달라졌음을 보여줬다. 개표 결과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한 가운데, 여러 주에서 데이터센터 개발을 제한하는 주민투표 안건이 잇따라 통과했다. 전기요금 상승과 용수 사용, 소음 같은 생활 불편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데이터센터 유치가 곧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공식이 흔들린 것이다.
정치 지형의 변화는 곧바로 자본시장으로 전이됐다. 선거 직후 이틀간 AI 관련 자산에는 매도가 몰렸고, S&P1500 기술주 가운데 50개 이상이 하루 만에 10% 넘게 빠졌다. 최근 한 달간 기술주는 S&P500 대비 10.7%포인트 뒤처지며 2002년 5월 이후 가장 부진한 흐름을 나타냈다. 개인투자자의 매도 강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용시장도 긴장하고 있다. AI 인프라 관련 기업과 우주기업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대형 기술기업이 데이터센터 임차·공급 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했다는 보도까지 겹쳤다. AI 붐의 수익성이 아니라 '누가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가 시장의 질문으로 바뀐 셈이다.
매출은 급증, 손실도 급증
앤트로픽은 컴퓨팅 비용 부담을 안고 상장에 나선다. / 출처: Meridian Standby Power 앤트로픽의 성장세 자체는 여전히 경이롭다. 신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매출은 163억달러로 전년 동기(11억6000만달러)의 14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순손실은 807억달러로, 대규모 컴퓨팅 비용과 회계 처리 영향이 반영됐다. 3분기 매출은 168억~170억달러 사이로 보도됐고, 3분기 순손실은 23억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3분기 영업이익은 5억67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서며 직전 분기(9억7400만달러 흑자)와 대조를 보였다. 컴퓨팅 비용이 매출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9월 말 기준 순매출유지율(NRR)은 약 900%로, 기존 고객의 지출이 1년 만에 아홉 배로 늘었다는 점은 강점으로 평가된다. 기업 고객이 파일럿 단계에서 전사 도입으로 확장하는 흐름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국내 투자자는 '구경만'…인수단에 국내 증권사 없어
국내 투자자에게 이번 상장은 그림의 떡에 가깝다. 신고서에 이름을 올린 22곳의 인수단에 국내 증권사가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모주 청약에 직접 참여하기 어렵고, 상장 이후 거래소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 외에는 선택지가 사실상 없다. 상장 전후로 AI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나 관련 종목으로 자금이 우회 유입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상장 시점이 밀리면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 집행 계획도 함께 늦춰질 수밖에 없다. 미국 기술주 비중을 늘리려는 수요가 상당하다는 점은 국내 증권가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된 사안이다. 앤트로픽 상장이 'AI 투자 사이클의 정점'을 알리는 신호로 읽히는 만큼, 일정 자체가 투자 심리의 지표가 된 상황이다.
상장 연기되면 AI 생태계 전체가 시험대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가 정치 쟁점으로 번지며 상장 환경도 바뀌었다. / 출처: ZME Science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로드쇼 개시 여부다. 상장을 미루면 AI 생태계 전반의 건전성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 있다. 연기 결정은 곧 "가장 이름값 높은 AI 기업조차 자금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어, 기술주 비중이 높은 주요 지수의 밸류에이션에도 부담이 된다.
일정을 강행하더라도 변수는 남는다. 일부에서는 공모 규모가 10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데, 이 물량을 소화하려면 시장이 안정돼 있어야 한다. 추수감사절 연휴(11월 26일) 전에 거래를 시작하려는 회사 입장에서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반대로 AI 관련 자산의 조정이 진정되고 수요가 회복되면, 연기를 택할 이유도 줄어든다.
결국 이번 주가 분수령이다. 로드쇼가 예정대로 열리면 앤트로픽은 2조달러를 넘보던 몸값을 1조5000억달러로 낮춰 제시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전망이다. 반대로 수요 확보에 실패하면 상장은 연내에서 내년으로 밀릴 수 있다. AI 산업의 자본 조달 창구가 열려 있는지를 가늠할 첫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