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의 그림자에는 전력이 있다. 데이터센터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전력 수급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AI 데이터센터가 만들어내는 추가 전력 인프라 비용을 일반 가정이 나눠 내게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정면으로 제기됐다. 정부는 요금 전가를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전력 수요 급증 자체는 여전히 국가 전력 계획의 최대 변수로 남아 있다.

5년 만에 5배…AI 데이터센터가 밀려온 '전기 수요'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올해 565테라와트시(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47TWh보다 26% 늘어난 규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가 전체 전력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2.1%에서 올해 4.4%, 2030년에는 10.2%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수요 전망도 급격하게 상향 조정되는 추세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4월 공개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전망 잠정안에 따르면, 2040년 국내 전력소비량은 657.6~694.1TWh로 지난해 판매량 549.5TWh보다 최대 26% 늘어난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현재 8.2TWh에서 2040년 최대 42.1TWh까지 5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 정부가 데이터센터 설립 계획 쏠림을 반영해 전체 수요 전망을 700TWh 이상으로 더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상 서버 이미지. 데이터센터가 AI 확산과 함께 급증하면서 전력 수요 논란이 커지고 있다 / 출처: Rawpixel / 라이선스: FREE(CC0)

규모감을 살펴보면 1기가와트(GW)급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하루에 쓰는 전기는 2,400만kWh로, 4인 가구 5만7,000곳이 한 달에 쓰는 양과 맞먹는다. 같은 규모의 시설이 1년 내내 가동되면 연간 87억6,000만kWh를 소비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목표로 세운 상태다.

"급격하게 탈탄소를 추진하느라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달라. 기저 전력 확보 문제에서 너무 교조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이 발언은 전력 수요 급증이 정책 현안으로 격상됐음을 보여준다. 이어진 해외 사례에서는 증설 비용의 부담 주체를 두고 각국이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미국, 법으로 '요금 전가'를 막았다

미국 연방 하원은 지난 9월 16일 '요금납부자 보호법(Ratepayer Protection Act)'을 찬성 417표, 반대 3표라는 초당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100메가와트(MW) 이상 대규모 전력 소비시설을 겨냥해,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새로 짓거나 보강해야 하는 발전소·송전망 등의 증분 비용을 사업자가 전액 부담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계약 조기 해지나 철수 시 투자비를 물어내는 위약금 조항과 사전 금융 보증 의무도 포함됐다. 다만 각 주에 의무 적용을 강제하지는 않는 방식이라 상원 심의가 남아 있다.

서버 장비가 늘어선 데이터센터.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전력 부담을 정리하는 법적 안전장치 논의가 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 출처: PICRYL(미국 국립기록원 소장 자료) / 라이선스: FREE(퍼블릭 도메인)

배경에는 가정요금 급등이 있었다. 미국의 주거용 전기요금은 2025년 약 5%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평균 4% 추가 상승이 전망됐고, 데이터센터가 집중된 워싱턴DC의 가정용 전기 구매요금은 작년 6월 17.7% 폭등한 뒤 올해 7월에도 7% 더 올랐다. 버지니아주는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에 직접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고, 말레이시아는 데이터센터용 초고압 요금을 일반 평균보다 30% 가까이 비싸게 책정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전력회사는 계약용량을 기준으로 최소 요금을 부과하고, 사업이 12개월 넘게 지연되면 설비 구축 비용을 전액 보전받는 협약을 맺어 사실상 '사용하지 않아도 내는 요금' 구조를 만들었다.

우리 전기요금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국내 가정용 전기요금은 동결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분기에 11분기 연속 동결이 유지됐고, 올해도 분기별 연료비 조정단가가 기존 수준(㎾h당 5원)을 유지하면서 4분기 역시 현행 요금이 유지됐다. 다만 한국전력의 누적 부채가 21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라 재무 정상화와 전력망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요금 인상 논의가 잠복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쟁점은 데이터센터의 요금 체계다. 국내 데이터센터는 산업용이 아닌 일반용 요금을 적용받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평균 판매단가는 ㎾h당 172.99원이다. 업계는 요금이 ㎾h당 1원만 오르면 1GW 데이터센터가 연간 87억6,000만원씩 부담이 늘어난다고 계산한다. 전용 요금이 높게 책정되면 국내 투자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의 답은 '전용요금제'…원칙은 원인자 부담

"전용요금제가 턱없이 요금을 저렴하게 해 주는 제도는 아니다. AI 데이터센터 전용요금제를 도입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다른 전력요금이 인상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설계를 잘하겠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6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이같이 답했다. 해외에서는 신규 전력망 구축 비용이 주택용 요금으로 전가되는 사례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한국전력이 전력망 비용을 기본요금 형태로 흡수하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겠다는 설명이다. 기후부 관계자도 "AI 데이터센터에 전기요금 특례를 줄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력 인프라 풍경. 데이터센터 전용요금제 설계에서 전력망 증설 비용의 부담 주체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 출처: PickPik / 라이선스: FREE

국회에서는 구체적 안전장치도 제안됐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전용요금제에 계약용량 기준 최소 사용요금을 도입하고, 전력 공급 계약에 설비 투자비 부담과 사업 지연·철회 시 비용 회수 조항을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오하이오 사례 등을 종합해 합리적으로 설계하겠다고 답했지만, 개별 조항의 도입 여부는 확정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 특성에 맞는 그리드코드 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했다.

결국 관건은 '비용 전가 방지 설계'

가정 요금이 오늘 당장 오른다는 신호는 없다. 오히려 동결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정부와 국회 모두 '데이터센터가 자기 부담은 스스로 내는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논의를 모으고 있다. 다만 변수는 있다. 2040년까지 데이터센터 수요가 5배로 늘어난다는 전망이 실현되면 발전소와 송전망 투자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고,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요금 정책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 수요 예측치 자체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도 짚는다. 무제한적인 수요 수용보다 검증과 수요측 책임성 부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다. AI 붐이 가져올 전기요금 충격의 크기는 결국 '누가 비용을 내는가'를 정하는 요금 설계에 달려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