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상 최고치 12만6천 달러를 기록했던 비트코인 시장이 또다시 큰 출렁임을 겪고 있다. 지난주 8만 달러 지지선을 잃은 비트코인은 주말과 월요일에 걸쳐 반등을 시도했지만, 밤사이 다시 매도세가 몰리며 급락 반전이 나타났다. 암호화폐 시세 집계 사이트 코인게코 기준 4일 오전 비트코인은 24시간 동안 1.2% 하락한 7만5839달러에 거래됐다. 이더리움은 2230달러, 솔라나는 90달러대로 각각 내렸고, 전체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2조57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사상 최고치 대비 비트코인의 하락폭은 40%에 가까워진 상태다.
거래소 화면을 지켜보는 투자자의 모습. 급락장에 레버리지 포지션 청산이 이어지고 있다 / 출처: Flickr 역대 최대 60억 달러 해킹, 시장 신뢰를 흔들다
이번 급락의 출발점은 지난주 터진 바이낸스 해킹 사건이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지난달 말 약 6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도난당했는데, 달러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해킹으로 기록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10월 31일 공식 경보를 통해 이 사건이 북한 해킹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의 소행이라고 공식 규명했다.
범인들은 도난 자산을 주로 이더리움으로 바꾼 뒤 탈중앙화금융(DeFi)과 인스턴트 스왑 서비스를 거쳐 세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인앨리시스에 따르면 해커는 트론 네트워크에서 1천 개가 넘는 지갑 주소를 거쳐 5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옮겼고, 이후 이더리움·비트코인 등 여러 체인으로 자금을 분산시켰다. 미국 비밀경호국은 공격 직후 수 분 만에 업계 협력 기관과 함께 도난 자산의 상당 부분을 동결시켰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지난 1일 새벽(미 동부시간) 출금을 단계적으로 재개했지만, 신뢰 회복은 빠르지 않았다. 출금 재개 첫 9시간 30분 동안 출금액 46억4900만 달러에서 입금액 10억1000만 달러를 뺀 약 36억4천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이는 회사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1710억 달러 규모 증명자산의 2.1%에 해당한다. 바이낸스는 공식 채널을 통해 "출금 물량이 초기 급증 이후 안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거래소 지갑에서 이루어지는 출금 하나하나가 시장에서는 두 번째 악재를 경계하는 시선으로 해석되고 있다.
해킹 사건 이후 거래소 자금 흐름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자동 매매 물량도 출렁이고 있다 / 출처: Wall Of Traders 매파적 연준, 금리 인하 기대를 지웠다
거시 환경 역시 위험자산에 불리하게 돌아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10월 28일 기준금리를 연 3.75~4.00%에서 동결했다.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를 상당 부분 반영해 왔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위원 12명 가운데 2명이 오히려 금리 인상에 표를 던지며 매파적 색채를 드러냈다. 금리 인하 기대가 사라지면서 주식과 암호화폐 등 위험자산에 대한 재가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비트코인은 여전히 나스닥 기술주와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는 고베타 자산으로 분류된다. 최근 반도체와 인공지능 관련주가 급락하면서 주간 시장의 약세가 주말과 야간의 암호화폐 시장으로 그대로 전이됐다. 기술주 매도세가 진정되기 전에는 비트코인 반등 시도가 매물로 처리되기 쉽다는 진단이 시장 전반에서 나온다.
금리 동결과 매파적 위원 2명의 인상표가 위험자산 매도로 이어졌다 / 출처: PICRYL(퍼블릭 도메인)ETF 자금 유출과 수요층의 균열
수요 측면에서도 균열이 뚜렷하다.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는 금요일 하루에만 6억4천만 달러가 순유출됐으며, 블랙록과 피델리티 운용 상품을 중심으로 자금 이탈이 집중된 것으로 집계됐다. 10월 한 달 동안 누적 유출 규모도 1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 자금이 시장을 지지하던 구조가 흔들리면서 하방 압력이 커졌다.
주요 거래사 실적도 시장 심리에 타격을 줬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하고 목표주가를 258달러에서 120달러로 대폭 끌어내렸다. 코인베이스의 3분기 매출은 12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고, 거래 수수료 수입은 44% 감소했다. 해킹 사건 이후 업계 전반의 수익성과 신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청산 연쇄와 중간선거, 이중 불확실성
가격 하락이 레버리지 청산을 부르고, 청산이 다시 가격을 끌어내리는 악순환도 반복됐다. 바이낸스 해킹 사태가 터진 밤에는 한 시간 만에 6억 달러가 넘는 롱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고, 이후에도 하루 수억 달러 규모의 청산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이 완전히 디레버리징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작은 악재에도 낙폭이 커지는 구조다.
여기에 오늘(4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가 변수로 겹쳤다. 선거 결과에 따라 규제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 앞에서 투자자들은 신규 포지션을 열기보다 기존 포지션을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레버리지를 든 채로 결과를 기다리는 투자자가 줄어들면서 매수세가 자연스럽게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전망: 200일선 방어가 분수령
시장이 주목하는 가격대는 분명하다. 먼저 7만4천 달러는 일봉 삼중 천정에서 도출된 하방 목표이고, 7만3200달러 부근의 200일 이동평균선은 이 사이클의 마지막 주요 지지선으로 꼽힌다. 반대로 8만 달러를 되찾으면 약세 구도가 무효화되고, 주봉 종가가 8만3천 달러를 넘으면 하락 추세가 종료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200일선이 무너질 경우 7만 달러대 초반까지 하락 공간이 열린다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역사적으로 비트코인은 미국 중간선거 이후 저점을 만들어온 패턴을 보여왔다. 2014년 이후 세 차례의 사이클에서 이 패턴이 유지됐다는 분석이 있지만, 이번 사이클은 해킹이라는 비전형적 악재가 겹쳐 있어 패턴 준수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신중한 시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선거 결과가 정리되고 거래소 신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레버리지 사용을 자제하고 현금 비중을 유지하는 전략을 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