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수명이 또 한 번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생명표에 따르면 그해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83.7세다. 남성 80.8세, 여성 86.6세로 50년 전보다 20년 넘게 길어졌다. 그런데 같은 통계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미래가 나란히 들어 있다. 이 아이가 80세까지 살 확률은 남성 64.4%, 여성 82.2%지만, 100세까지 살 확률은 남성 1.2%, 여성 4.8%로 급격히 낮아진다. '백세 시대'는 모두가 백세까지 산다는 뜻이 아니라, 백세까지 살아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는 뜻에 가깝다. 문제는 그 길어진 시간을 누구는 여유로, 누구는 생계로 보낸다는 점이다.
수명 83세, 건강수명 65세…남는 18년의 정체
관건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다. 통계청은 2024년생의 건강수명을 65.5년으로 집계했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해내는 기간이 65세를 전후해 끝난다는 뜻이다. 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의 18년 안팎 간격은 병원비와 돌봄 부담, 그리고 소득이 끊긴 시간과 겹친다.
노후의 재정 압박은 이미 숫자로 드러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5년 1,0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했다. 10명 중 2명이 노인인 셈이다. 주민등록 기준으로는 2024년 12월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36년 30%, 2050년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월 69만원과 월 198만원, 이 격차가 답이다
노후를 가르는 가장 현실적인 숫자는 들어오는 돈이다. 국민연금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수급액은 2026년 기준 69만 5,958원이다.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2.1% 오른 금액으로, 2025년 68만 1,644원에서 1만 4,000원가량 늘었다.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연금액은 2025년 68만 1,644원에서 2026년 69만 5,958원으로 조정된다." (국민연금 급여지급 통계 기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2026년 단독가구 기준연금액이 월 34만 9,700원으로 2.1% 인상됐다. 수급 기준이 되는 소득인정액은 단독가구 월 247만 원, 부부가구 월 395만 2,000원으로 올랐다. 정부는 저소득 노인부터 기초연금을 월 40만 원으로 인상하고 2027년에는 대상을 전체로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노후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금액은 훨씬 크다.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에서 50세 이상 국민이 답한 적정 노후 생활비는 개인 기준 월 198만 원, 부부 기준 약 298만 원이었다. 공적연금 평균 수급액과 나란히 놓으면 세 배 안팎의 간극이 생긴다. 이 틈을 무엇으로 메우느냐가 백세 부자와 백세 거지를 가른다.
OECD 1위라는 불편한 기록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국제 비교에서도 뚜렷하다. 66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40% 안팎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 14.8%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2025년 고령자 통계에서는 고령자 가구의 37.8%가 1인 가구로 나타나, 소득과 돌봄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노인이 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제도는 이미 움직였다…보험료 13% 시대
202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18년 만의 연금개혁으로, 핵심은 내는 돈과 받는 돈을 동시에 조정하는 것이다.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오른다. 다만 한꺼번에 오르지는 않는다. 2026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인상돼 2033년에 13%에 도달한다. 소득대체율은 41.5%에서 43%로 높아진다.
효과도 숫자로 확인된다.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56년으로 예상됐던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64년으로 8년 미뤄졌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개선되면서 소진 시점이 2065년까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이는 제도가 더 오래 버틴다는 의미일 뿐, 개인의 노후가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뜻은 아니다.
집과 계좌와 일자리…스스로 메우는 노후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도 늘었다. 주택을 담보로 매달 연금을 받는 주택연금은 누적 가입자가 15만 명을 넘어섰다. 2026년 6월부터는 임대 중인 주택도 승인을 받으면 가입할 수 있고, 부모의 주택연금을 자녀가 이어받는 제도도 시행된다.
세제 지원도 있다. 연금저축과 IRP를 합쳐 연 1,80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고, 이 가운데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다. 총급여 5,500만 원 이하 가입자에게는 16.5%의 공제율이 적용돼 최대 148만 5,0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일하는 노후도 제도가 됐다. 2026년 노인일자리 사업 규모는 115만 2,000개로 역대 최대다. 국비 2조 4,000억 원과 지방비 2조 6,000억 원이 투입되며, 기초연금 예산은 24조 4,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결국 갈리는 것은 준비의 시차
노후준비 실태조사에서 노후 준비가 잘돼 있다고 답한 비율은 19%에 그쳤고, 응답자의 절반은 준비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남성이 100세까지 살 확률 1.2%라는 숫자는 희망이라기보다 경고에 가깝다. 확률은 낮지만, 그 확률에 걸린 사람에게는 100세까지 버틸 현금흐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명은 이미 83세를 넘어섰고 연금 제도는 20년 단위로 손질되고 있다. 개인의 준비 주기가 제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같은 나이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노후를 살게 된다. 백세 부자와 백세 거지의 차이는 특별한 재능이나 운이 아니라, 계산기를 얼마나 일찍 두드렸는지에서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