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교통사고 경상환자에게 관행적으로 지급해 온 자동차보험 '향후치료비' 기준을 전면 개편했다. 빠른 합의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쓰이던 향후치료비가 원칙적으로 사라지는 대신, 환자가 실제로 지출한 치료비를 끝까지 보장하는 방향으로 보상 구조가 바뀌고 있다. 경상환자의 장기 치료를 심사하는 이른바 '8주룰'을 담은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은 2026년 9월 10일부터 적용됐다.

향후치료비, 이제 '합의금'이 아니다
향후치료비는 치료가 끝난 뒤 장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 치료비를 미리 계산해 지급하는 돈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사고를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 이 항목을 약관상 뚜렷한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지급해 왔다. 그 결과 피해자가 받는 합의금 안에 향후치료비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개편의 핵심은 지급 대상을 좁히는 것이다. 장래 치료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중상환자(상해등급 1~11급)에게만 향후치료비를 주고, 염좌나 단순 타박상 진단을 받은 경상환자(12~14급)는 원칙적으로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대신 경상환자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실제로 발생한 치료비를 보장받는 방식으로 보상받게 된다. 정부는 이 조치가 "제도적 근거가 없는 향후치료비"를 정리하고, 피해 정도에 맞는 배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바뀌었나…1조4000억원 '새는 돈'
배경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향후치료비가 있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2025년 2월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개선 대책'을 발표하며, 2023년 기준 향후치료비 규모가 1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같은 해 경상환자에게 지급된 치료비 약 1조3000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경상환자 치료비 자체도 빠르게 늘었다. 최근 6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9%로, 중상환자(3.5%)의 2.5배를 웃돌았다. 보험사가 조기 합의를 위해 지급한 향후치료비가 2400만명이 넘는 가입자의 보험료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감사원도 2024년 감사에서 근거 없는 합의금이 과도하고 다른 보험과 중복 수급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보험업계의 실적 악화도 배경으로 꼽힌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2023년 80.7%에서 2024년 83.8%, 2025년 87.5%로 계속 올랐고, 자동차보험 부문은 2025년 7080억원 적자를 냈다.

"자동차보험 운용 질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가입자의 부담은 낮추면서 사고 피해자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백원국 국토교통부 차관 (출처: 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8주 넘겨 치료하려면 별도 심사
경상환자의 장기 치료를 걸러내는 장치도 새로 도입됐다. 상해등급 12~14급 가운데 염좌나 단순 타박상 진단을 받은 사람이 사고일로부터 8주를 넘겨 치료받으려면 장기 치료 필요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절차는 이렇다. 환자가 사고일로부터 7주 이내에 진단서와 진료기록부 사본 등 입증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하면, 보험사가 이를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자배원)에 전달한다. 자배원은 전문 의료인의 검토를 거쳐 요청일로부터 7일 이내에 결과를 통보한다. 결과에 동의하지 않으면 통보일로부터 7일 이내에 국토교통부 공제분쟁조정분과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위원회는 14일 이내에 심의 결과를 알려준다. 심사 수수료와 필수 서류 발급비는 보험사가 부담한다.
골절이나 장기 손상 같은 중상환자(1~11급)는 심사 대상이 아니며, 후유증 위험을 고려해 영유아와 임산부도 심사에서 빠진다. 참고로 현재 자동차보험을 적용받는 경상환자의 90%는 상해일로부터 8주 이내에 치료를 마친다.
병원 치료는 오히려 강화, 중상환자는 향후치료비 유지
개편의 방향은 '합의금 축소'와 '치료 보장 강화'를 함께 가는 것이다. 경상환자가 받는 향후치료비는 줄어들지만, 치료가 끝날 때까지 실제로 발생한 치료비는 보장 범위 안에서 온전히 보상받는다. 장래 치료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중상환자는 기존처럼 향후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보험료 부담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정부는 이번 개선으로 불필요한 보상금 지급이 줄어 개인의 자동차보험료가 약 3% 내외 인하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에서는 8주룰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개선방안을 통해 불필요한 자동차 보험금 누수의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처: 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우려와 전망
제도의 빈틈을 노린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뇌진탕(11급)이나 추간판탈출증(9급)처럼 상해등급 1~11급에 해당하는 진단을 받으면 8주룰 적용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에, 상해등급을 높여 진단받으려는 움직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심사 대상이 되기 전인 8주 이내에 치료 횟수를 늘리거나 고가 진료를 집중적으로 받는 방식으로 청구가 늘 가능성도 제기된다.
환자의 정당한 치료권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제도 시행 이후 실제 진단과 치료, 보험금 청구 추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개편된 향후치료비 지급 기준은 개정 약관으로 체결된 계약 가운데 보험기간이 2026년 10월 25일 이후 시작되는 계약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자세한 내용은 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보도자료(2025. 2. 26, 자동차보험 부정수급 개선 대책)와 금융위원회 홈페이지(fs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