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현관을 나서기 전 보일러 조절기의 '외출' 버튼을 누르는 가정이 많다. 집을 비운 동안 난방을 멈춰 가스 요금을 아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보일러 업계와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 버튼의 이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외출 모드는 요금을 깎아주는 절약 기능이 아니라, 배관이 얼어 터지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에 가깝다. 짧은 외출에 눌렀다가는 오히려 더 많은 연료를 태우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겨울철 실내 온기는 설정 온도보다 창호와 단열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 / 출처: 온담창호 / 라이선스: 유료·저작권 있음

이름은 '외출', 임무는 '동파 방지'

외출 모드에 들어가면 보일러는 바닥 난방을 사실상 멈춘다. 대신 펌프를 간헐적으로 돌려 난방수를 배관 안에서 순환시키고, 수온이 위험 수준까지 떨어지면 버너를 잠깐씩 켠다. 제조사 설명을 종합하면 난방수 온도가 6도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동파 방지 로직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실내 온도는 대개 1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선에서 유지된다.

이 기능이 '외출'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난방수 보일러가 막 보급되던 시절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가스 요금 부담이 크지 않아, 이 모드가 실제로 요금을 얼마나 아껴주는지 따져볼 필요가 없었다. 업계에서는 지금도 "동파 방지 모드라고 불렀어야 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름과 실제 기능 사이에 생긴 이 틈이, 겨울마다 반복되는 오해의 출발점이다.

정작 문제는 습관이다. 절약 버튼으로 각인되다 보니 두세 시간 장을 보러 나가면서도, 출근하면서도 무심코 누르게 된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짧을수록 이 선택의 손실은 커진다.

조절기의 '외출' 표기는 절약이 아니라 최소 가동을 뜻한다. / 출처: 더큐뉴스

10도에서 22도로 되돌리는 구간이 손실

건물이 밖으로 빼앗기는 열량은 실내와 외기의 온도 차이에 비례한다. 집이 22도를 유지할 때와 10도까지 식었을 때, 벽과 바닥이 머금은 열의 양은 다르다. 외출 모드로 실내를 10도까지 떨어뜨렸다가 귀가 후 다시 22도로 끌어올리면, 그 12도 차이를 메우는 동안 보일러는 최대 출력으로 오래 돌아야 한다. 유지하는 데 쓰는 연료보다 다시 데우는 데 쓰는 연료가 더 큰 구조다.

여기에 '과난방'이 겹친다. 집에 들어와 추위를 참기 어려우면 설정 온도를 20도 후반에서 30도까지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열손실만 커지고 방은 금세 건조해진다. 보일러는 3방 밸브로 난방과 온수를 번갈아 공급하기 때문에, 실내를 빨리 데우고 싶은 날에는 따뜻한 샤워를 뒤로 미루는 편이 낫다. 난방과 온수가 동시에 돌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외출할 때는 설정 온도보다 2~3도 낮추는 것이 좋고, 장기간 집을 비우는 경우에는 외출 모드를 쓰는 것이 합리적인 열 사용이 될 것 같습니다." — 지역난방공사 관계자

익숙한 오해도 하나 있다. 물을 쓰지 않을 때 수도꼭지를 냉수 방향으로 돌려두면 온수를 데우는 요금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보일러는 물이 실제로 흐르는 순간을 감지해 온수를 만드는 방식이어서, 꼭지 방향만 바꿔서는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상황별로 답이 다르다

결론은 단순하다. 집을 비우는 시간에 따라 설정을 바꿔야 한다. 보일러를 아예 끄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답이 아니다. 배관 안에 남은 물이 혹한에 얼면 배관이 갈라지고, 수리비는 몇 달치 가스 요금을 훌쩍 넘는다.

상황 권장 설정 이유
2~5시간 외출, 당일 출퇴근 평소보다 2~3도 낮게 유지 재가동 손실이 절약분보다 크다
1박 2일 실내 15도 안팎 복귀 후 회복 시간을 줄인다
3일 이상 장기 외출 외출 모드 동파 방지와 최소 연료의 균형점
일주일 이상, 한파 특보 외출 모드 또는 실내 10~15도 배관 동결 위험이 커지는 구간
전원 차단 어떤 경우에도 금지 동파 방지 로직 자체가 멈춘다

표에서 눈여겨볼 항목은 마지막 줄이다. 오래 집을 비울수록 전원을 뽑아두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반대다. 보일러의 전원이 꺼지면 수온을 감시하다 자동으로 버너를 켜는 장치도 함께 멈춘다.

요금은 결국 '새는 열'에서 갈린다

설정 온도를 어떻게 잡느냐만큼 중요한 것이 단열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은 겨울철 적정 실내 온도를 20도로 제시하면서, 이 온도를 1도 낮추면 에너지 소비량이 약 7% 줄어든다고 안내한다. 같은 20도라도 창문 틈으로 찬 공기가 들어오는 집은 보일러가 그만큼 더 돌아야 한다.

문풍지와 창문 단열 시트, 두꺼운 커튼은 비용이 적게 드는 대표적인 보강책이다. 창호 업계 자료를 보면 남향 창은 햇빛으로 들어오는 열이 많아 단열재를 덧대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고, 해가 들지 않는 북향 창에서 효과가 크다. 실내 습도를 40~60%로 유지하는 것도 체감 온도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내복을 입으면 같은 온도에서 2도 이상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분석도 있다.

온수 설정도 손봐야 한다. 온돌 모드에서 난방수 온도는 40~45도 선이 무난하다는 조언이 많다. 반대로 단열이 약한 집에서 실내 온도 기준으로 맞춰두면, 설정 온도에 닿을 때까지 보일러가 계속 돌아 요금이 튀는 경우가 있다. 쓰지 않는 방은 문을 닫고 밸브를 잠그면 난방 면적이 줄어 유리하지만, 한파에는 그 방의 배관이 얼 수 있으므로 밸브를 완전히 잠그지 말고 조금 열어두는 편이 안전하다.

제품마다 표기와 동작 방식이 달라 설명서 확인이 필요하다. / 출처: 더큐뉴스

'외출'은 사흘부터, 나머지는 2~3도

정리하면 이렇다. 하루를 비우는 정도라면 외출 모드 대신 설정 온도를 2~3도 낮춰두는 쪽이 요금에 유리하다. 사흘 이상 집을 비울 때만 외출 모드를 꺼내 들면 된다. 어느 쪽을 택하든 보일러 전원을 뽑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기별 편차도 확인해야 한다. 같은 '외출'이라도 제조사와 모델에 따라 유지 온도와 순환 주기가 다르다. 조절기 표시가 낯설다면 설명서의 해당 항목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버튼 하나로 겨울 요금이 갈리는 만큼, 이름보다 동작을 보고 눌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