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상원과 하원을 모두 차지한 민주당이 내년 1월 의회 개회와 함께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법안을 대거 발의할 계획인 것으로 6일(현지시간) 파악됐다. 로이터 통신이 의원들과 의회 보좌진,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도한 내용이다. AI 개발을 사실상 육성해 온 공화당 주도 의회와 정반대 방향의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 AI·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민주당이 20년 만에 미국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AI 입법 환경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 출처: Flickr 

"AI가 표를 움직였다"…출구조사 56%가 꼽은 결정 요인

NBC 뉴스가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56%가 AI와 데이터센터를 연방 하원 투표에서 '결정적이거나 중대한 요인'으로 꼽았다. 응답자의 87%는 이를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CNBC 유권자조사에서는 AI·데이터센터를 중대 요인으로 꼽은 유권자 가운데 65%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 해당 쟁점의 표심이 실제로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음을 보여준다.

지역 선거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여러 지역의 주민투표에서 데이터센터 개발 제한 안건이 통과했고, 텍사스에서는 데이터센터 승인 전면 중단을 공약한 민주당 신임 주지사가 당선됐다. 웰스파고에 따르면 텍사스는 미국 내 계획된 데이터센터 용량의 약 27%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이곳의 정책 변화가 전국 AI 인프라 사업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민주당 교섭단체)은 선거 직후 "국가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이 지금 필요하다"며 "미국인들은 빅테크가 환경과 일자리를 갉아먹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력 수요 급증이 쟁점으로 떠오른 AI 데이터센터 내부 모습 / 출처: The AI Risk Network 

입법 3대 축 — 전력요금·독립 검증·책임 소재

민주당이 준비 중인 법안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된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고 ▲첨단 AI 모델에 대한 독립적 안전성 평가를 의무화하며 ▲AI 기업이 제품이 일으킨 피해에 책임을 지는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다수당이 된 내년 1월부터 척 슈머 상원의원(뉴욕)이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전력요금 문제를 우선 과제로 올릴 예정이다. 하원에서는 로리 트레이언 의원(매사추세츠)이 독립 전문가가 선진 AI 모델을 안전 기준에 따라 평가하도록 요구하는 법안과, AI 시스템이 유해한 방식으로 작동했을 때 기업의 책임을 묻는 법안을 추진한다. 미시간주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압둘 엘사예드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AI 규제를 총괄하는 독립기구 설립을 공약했다.

여기에 상설위원회의 감독 권한이 곧 무기가 된다. 그렉 카사르 하원의원(텍사스)은 AI 기업 경영진이 "서약 아래 증언해야 한다"고 밝혔고, 지난 10월에는 민주당 하원 위원장급 의원들이 오픈AI·앤스로픽·메타·구글·스페이스X에 보안 관행과 설계자가 의도하지 않은 AI 작동 사례를 보고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최대 변수는 백악관 — '트럼프 거부권'

의회는 장악했지만 백악관은 공화당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AI 기술에 필수 규제를 만들자는 요구를 일관해 거부해 왔고, 최근에는 AI를 받아들여 "부자가 되고 싶은" 주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방 차원 법안이 법제화되려면 양원 3분의 2의 재의 찬성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입법 가능성을 낮게 보지 않는 목소리가 크다. 투자사 레이몬드 제임스의 정책연구를 이끄는 에드 밀스는 "입법 확률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고 평가했고, 매년 통과돼야 하는 예산·필수 법안에 AI 규제 조항을 삽입하는 경로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연방 의회가 교착 상태에 빠질 경우 캘리포니아 같은 주(州)의 규제가 사실상의 미국 표준이 되고, 이것이 다시 글로벌 기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AI 산업에 미칠 파장

한국 경제에서 미국 AI 시장의 비중은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핵심 파트너이고,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도 미국 시장과 인프라에 깊이 묶여 있다. 미국 연방 차원의 규제 전환이 데이터센터 신규 투자 속도를 조정하면 메모리·전력·냉각 장비로 이어지는 공급망 수요에도 연쇄 효과가 불가피하다.

시장은 이미 반응했다. 선거 직후 미국 증시에서 기술주 매도가 이어져 엔비디아는 하루에 8%, AMD는 14% 넘게 하락했고 반도체 지수 ETF(SOXX)도 약 9% 빠졌다. 매도는 유럽과 아시아로 번졌고, 한국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피 순매도가 이틀가량에 2조5000억원 수준에 이른다는 국내 집계가 전해졌다.

미국 빅테크 AI 인프라 투자와 직결된 반도체 클린룸. 규제 전환 시 공급망 파장이 관심이다 / 출처: Angstrom Technology 

규제 강화가 한국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AI 신뢰성 요건이 명확해지면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AI'를 미리 준비한 기업에 기회가 된다는 논리다. 한국은 올해 초부터 AI 기본법을 시행하고 있어 주요국과 제도 정합성을 맞추는 과제도 남는다. 다만 당분간은 본격 입법보다 청문회와 자료 요구를 통한 감시가 먼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므로, 산업계 입장에서는 내년 초 의회 개회 후 나오는 첫 법안 목록과 위원회 일정이 실질적인 관전 포인트다.

앞으로 지켜볼 신호들

1월 신설 의회 개회 이후 민주당 주도 상·하원 상설위원회의 의장단 구성과 첫 청문회 개최 여부가 첫 신호다. 이어 데이터센터 전력요금, AI 안전성 평가, 기업 책임 소재를 다룬 법안들이 발의되는지가 순차적으로 확인될 것이다. 미국 연방 입법의 방향은 곧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한국 AI·반도체 산업의 규제 환경이자 수요 환경의 방향이기도 하다. 업계는 발의되는 법안 초안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미국 시장 진출과 투자 시나리오를 다듬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