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이 나스닥 상장을 향한 공식 절차에 들어갔다. 앤트로픽은 현지 시간 26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주식 상장 등록 서류(S-1)를 제출했으며, 나스닥 글로벌 셀렉트 마켓에서 'ANT'라는 티커로 거래될 계획이다. 상장 시점은 오는 11월 중순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고, 거래될 기업가치는 최대 2조 달러 선까지 다양하게 거론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로 기록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가 흐름이 표시된 거래 모니터. 앤트로픽의 대형 상장 소식에 글로벌 증시의 관심이 쏠렸다 / 출처: PxHere / 라이선스: FREE(CC0)

클로드의 성장 속도, 상장 서류에 그대로

S-1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매출 성장세는 눈에 띈다.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68% 급증했고, 3분기 매출은 직전 분기보다 45% 늘어 168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투자자 설명회에서 전해졌다. 7월 말 기준 연환산 매출(run rate)은 65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고객 확대 속도도 돋보인다. 기존 고객의 지출이 1년 사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순수익 유지율(NRR)이 9월 말 기준 900% 수준이다. 중앙값 기준으로 일반 상장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기업은 108%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개발자 코딩 도우미 '클로드 코드'의 수요가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적자 규모는 커졌다. 올해 상반기 순손실은 807억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130억 달러보다 크게 확대됐다. 이 가운데 720억 달러는 주식 전환이 가능한 채권의 공정가치가 오르면서 반영된 회계적 비용으로, 실제 현금 유출은 아니다. 회계 비용을 제외하면 지난해 영업손실은 매출 46억 달러 대비 약 81억 달러 수준이었다.

10년간 5,180억 달러… 초대형 인프라 약정 동반 공개

서류에는 대규모 컴퓨팅 확보 계획도 담겼다. 앤트로픽은 아마존에는 2036년 4월까지 최소 1,100억 달러, 스페이스X에는 2029년까지 1,200억 달러, 구글에는 2033년까지 1,15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에는 2033년까지 450억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다. 10년간 클라우드와 인프라에 약속한 금액은 최소 5,180억 달러에 이른다. 앤트로픽은 스페이스X AI 부문의 최대 단일 고객이기도 하다.

실제 지출 속도도 빠르다. 상반기 컴퓨팅 인프라 비용은 약 90억 달러로, 1년 전 23억 달러의 4배 가까이 불었다. 이를 뒷받침할 자금 여력도 있다. 창사 이후 누적 조달액은 약 1,410억 달러에 달하고 보유 현금은 1,124억 달러다. 다만 회사는 향후 매출 성장이 인프라 비용 등에 좌우될 수 있다며 추가 자금 조달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간사는 스페이스X 상장 때와 마찬가지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맡는다. 공모 주식 수와 공모가 밴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투자자 로드쇼를 거쳐 확정된다.

AI 상장 러시의 시금석 되나

이번 상장은 한 기업의 주가 이슈를 넘어 AI 산업 전체에 대한 시장 신뢰를 시험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지난 6월 스페이스X가 2조 1,000억 달러의 기업가치로 750억 달러를 조달하며 IPO 기록을 갈아치운 가운데, 앤트로픽은 이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후보로 꼽힌다.

시장 환경은 만만치 않다. 최근 AI 관련주 조정 움직임 속에 호주 AI 데이터센터 기업 퍼머스(Firmus)는 상장을 철회했고, SK하이닉스도 시장 상황을 이유로 미국 자회사 솔리딤의 상장 계획을 백지화했다. 앤트로픽 상장이 흥행에 성공하면 위축됐던 AI 관련 상장 물량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반면, 실패하면 내년 상장을 검토 중인 오픈AI에도 그늘이 짙어질 수 있다.

미 증시의 시선도 이번 IPO에 향해 있다. 나스닥100 지수는 올해 15% 상승으로 S&P500 지수(11%)를 앞서고 있지만, AI 투자 열기가 기술주 밖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토르스텐 슬록 수석 경제학자는 "AI 기술은 기술 부문 밖 미국 기업에 재무적 성과를 전혀 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증권거래소 거래장 전경. 대형 기업들의 상장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아카이브 / 라이선스: FREE(퍼블릭 도메인)

2조 달러 밸류에이션을 두고 갈리는 관측

가장 큰 변수는 밸류에이션이다. 2조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 평가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최근 재무 공개 이후 일부 투자자들은 1조 5,000억 달러 안팎의 하향된 수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분기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대로 둔화된 것이 판단 기로가 됐다.

규제와 안전 이슈도 상장 절차 내내 따라올 것으로 보인다. 앤트로픽의 S-1에는 90페이지가 넘는 위험요인이 담겼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안전성 조사의 일환으로 경영진 증언을 요구한 사실도 이번 IPO 과정에서 알려졌다. 앤트로픽은 서류에서 경고했다.

"충분히 발전된 AI 시스템은 적절한 안전장치·감독·보안 조치 없이 개발·배치·운영될 경우 인류에 치명적 혹은 실존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 앤트로픽 S-1 위험요인 항목
앤트로픽의 나스닥 상장으로 흔들리는 AI 시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일러스트 / 출처: AI 생성 이미지 / 라이선스: FREE(AI 생성)

상장 일정과 공모가는 향후 몇 주간의 로드쇼 결과에 따라 확정된다. 2조 달러대 기업이 증시에 앉는 자리가 AI 산업의 다음 국면을 알리는 신호가 될지, 아니면 거품 논쟁에 불을 지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