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전기 없으면 칩도 없다…美 데이터센터 규제가 흔든 반도체 호황 EXCERPT: 미국 텍사스가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를 멈춰 세우고 EU는 효율 공개 규제를 예고했다. 전력 병목이 AI 칩 주문의 새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은 10월 반도체 수출 259% 증가와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TAGS: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계통영향평가, HBM4, 데이터센터 규제 CONTENT:

AI 반도체 호황의 최대 변수가 칩 생산 능력이 아니라 전기라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2026년 11월 현재 미국 여러 주(州)가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와 전력망 연결을 잠그고, 유럽연합(EU)은 효율 공개 규제를 예고했다. AI 가속기에 들어갈 메모리를 만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망에도 "고객이 전기를 확보하지 못하면 주문도 밀린다"는 경고가 붙는다.

AI 서버 랙은 한 대당 수백 킬로와트의 전력을 요구한다. 랙 단위 전력 밀도가 높아지면서 전력 확보 능력이 데이터센터 입지의 핵심 조건이 됐다. / 출처: 더큐뉴스

텍사스, 허가부터 멈춰 세웠다

규제의 진앙은 텍사스다.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주 환경품질위원회에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전력망 연결을 추진한 시설 전반을 대상으로 한 감사가 끝날 때까지다.

배경에는 숫자가 있다. 텍사스에 접수된 대규모 전력 소비시설의 연결 신청 규모는 470기가와트(GW)를 넘어섰다. 주 전체 최대 전력 수요의 다섯 배가 넘는다. 값싼 전기와 넓은 땅으로 투자를 끌어모았던 주가 주민의 전기요금 부담을 이유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미국 전역의 신규 데이터센터 금지·제한 조치는 6월 말 300건에서 7월 500건 이상으로 늘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9월 21일 데이터센터의 에너지·용수 사용 효율 등급을 공개하는 규제안을 제안했다. 회원국과 유럽의회가 두 달 안에 반대하지 않으면 발효된다.

숫자로 본 전력 병목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5년 447테라와트시(TWh)에서 565TWh로 26%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 가운데 AI 최적화 서버가 차지하는 비중은 31%다.

병목은 발전량이 아니라 배전이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데이터센터 개발업체들이 2028년까지 32GW의 순전력 부족에 직면할 것으로 추산했다. 자체 발전과 연료전지 등 대책을 반영해도 필요한 전력의 34%가 모자란다는 계산이다. 2028년까지의 추가 전력 수요 전망치도 이전 68GW에서 97GW로 43% 높아졌다.

랙(서버 선반) 단위 밀도 상승이 부담을 키웠다. 엔비디아 '베라 루빈' 랙의 전력 가정치는 149킬로와트(kW)에서 234kW로, '루빈 울트라'는 415kW에서 600kW로 상향됐다. 효율 개선도 해법이 되지 못한다. 단위 비용 하락이 사용량을 다시 끌어올려 총소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구조다.

타격은 엔비디아보다 주변부

모건스탠리는 전력 병목이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의 내년 실적 전망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두 회사는 칩이 어디에 배치될지 파악하고 있어 공급망 조율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칩을 실제로 설치할 수 없게 되면 고객사는 인도를 늦추거나 주문을 취소할 수 있고, 이때 메모리와 광통신, 전력관리, 아날로그 부품이 재고 부담에 가장 크게 노출된다.

다만 아직 현실화된 충격은 크지 않다. 세미애널리시스는 미국 지자체 규제 구역에 포함된 약 20GW 가운데 실제 일정이 밀린 규모는 1525메가와트(MW) 수준으로, 3개 프로젝트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는 국가안보 논리가 자신들을 신뢰 부족 문제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 자히르 알리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경영대 교수, EE타임스 기고

한국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국의 정책 방향은 정반대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6월 공포돼 2027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인허가 일괄처리와 일정 기간 안에 결론이 나지 않으면 승인으로 간주하는 타임아웃제,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 시설 기준 완화가 골자다.

쟁점은 면제 기준선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0메가와트(㎿) 이하, 기후에너지환경부는 50㎿ 이하를 면제하자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로 계산하면 100㎿ 기준에서는 비수도권 신청 340건 가운데 253건(74.4%)이, 50㎿ 기준에서는 108건(31.8%)이 면제 대상이 된다.

제도 운영 실적을 보면 병목의 크기가 드러난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시범운영이 시작된 2024년 8월부터 2년 동안 한국전력에 접수된 데이터센터 1차 기술검토 신청은 999건·82GW였다. 이 가운데 577건·45.6GW가 '공급 가능' 회신을 받았고, 전력정책심의회 심의를 통과한 사업은 59건·5.9GW로 신청 용량의 약 7%다.

"비수도권 전력망도 여유롭지 않은 가운데 큰 규모의 전력 수요가 새로 들어오면 평가가 더욱 절실해진다. 이를 면제하겠다는 것은 법과 정책이 거꾸로 가는 것" —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해외는 반대로 효율 규제를 조인다. 독일은 에너지효율법에 전력사용효율(PUE) 목표를 신규 1.2, 기존 1.3으로 명시하고 위반 시 최대 10만유로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HBM은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쌓아 대역폭을 끌어올리는 구조로, 같은 용량의 범용 D램보다 많은 웨이퍼 면적과 전력을 필요로 한다. / 출처: 더큐뉴스

완판된 HBM, 259% 수출

그럼에도 국내 지표는 뜨겁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6년 10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59.4% 증가했고, 메모리 반도체는 501억4000만 달러로 360.5% 늘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9.0%까지 확대됐다. AI 서버용 고부가 메모리가 물량과 가격을 함께 끌어올린 결과다.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발표에서 HBM4 매출이 전 분기 대비 3배 이상 늘었고 전체 HBM 매출에서 HBM4 비중이 60% 수준까지 커졌다고 밝혔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 삼성전자의 HBM 점유율은 2025년 3분기 23%에서 2026년 2분기 33%로 올랐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56%에서 50%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선두다.

SK하이닉스는 고객 요청 물량이 자사 공급 가능 물량의 두 배를 웃돈다고 설명했다. 기존 장기계약과 협의 중인 수요를 합치면 2029년까지 D램과 HBM 생산 물량이 사실상 완판됐다는 것이다. 4분기에는 HBM4의 출하량과 매출 비중이 모두 HBM3E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속도와 허가 사이

칩을 사려는 수요는 2029년까지 예약됐고, 그 칩을 꽂을 건물의 허가는 미국에서 멈춰 있다. 규제가 건설 일정을 늦추고, 늦춰진 건설이 몇 분기 뒤 부품 주문 조정으로 되돌아오는 시차가 2027~2028년에 몰린다. 메모리 실적의 변수가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나'에서 '고객이 전기를 언제 확보하나'로 옮겨가는 국면이다.

데이터센터 전력 병목의 핵심은 발전량이 아니라 송배전망이다. 미국에서는 2028년까지 32GW의 순전력 부족이 추산된다. / 출처: PickPik

한국은 규제를 풀어 속도를 택했다. 다만 비수도권 면제는 전력망 여유가 확인되지 않은 입지까지 문을 열 수 있다는 지적을 안고 있다. 수출과 HBM 완판이라는 성적표가 완화의 명분을 뒷받침하는 동안, 전력망과 주민 수용성이라는 숙제는 시행령 협의 테이블로 넘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