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는 매매를 사람 대신 프로그램이 실행하는 자동매매 봇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오래 사용돼 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내세운 제품이 앞다퉤 출시되면서 소액 투자자들의 관심도 빠르게 높아졌다. 그러나 규제 당국 자료와 독립 분석 자료를 종합해 보면, "봇을 켜면 수익이 따른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핵심 변수는 봇이 아니라 전략과 시장 상황, 비용 구조다.
AI 기반 자동매매 봇은 규칙 기반 로직에 'AI'라는 라벨을 붙인 경우가 많다 / 출처: Jenova.ai'AI 봇' 시장은 커졌지만, 라벨과 실체는 다르다
3Commas, 크립토호퍼(Cryptohopper), 피오넥스(Pionex), 비츠갭(Bitsgap) 등 주요 플랫폼은 그리드 매매, 분할매수(DCA), 시그널 추종 같은 전략을 자동 실행하는 봇을 상품화해 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로 머신러닝 모델을 운용하기보다 고정된 규칙 로직에 AI라는 이름을 붙인 마케팅적 구성이라는 지적이 업계 분석 자료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미국 암호화폐 트레이딩 봇 분석 업체 알트레이디(Altrady)는 최신 분석에서 "소매용 봇 제품의 'AI'는 기계학습보다 마케팅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진술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수익성 변수는 크게 네 가지다. 전략과 시장 국면의 적합성, 리스크 관리 설정, 수수료·구독료 등 비용, 그리고 봇을 설정하고 관리하는 운용자의 역량이다. 같은 봇이라도 횡보장에 최적화된 그리드 전략은 강한 추세장에서 매도 타이밍을 놓치고, 추세 추종 전략은 그 반대 성격을 보인다.
공개된 수익률 데이터는 어떻게 나왔나
객관적인 대규모 통계는 드물지만, 공개된 실측·시뮬레이션 자료는 상당히 냉정한 그림을 보여준다. 알트레이디가 비낸스 BTC·ETH 일봉에 0.1% 수수료를 반영해 진행한 시뮬레이션에서는 2024년 1월부터 2026년 10월까지 50일 이동평균 추세 필터 전략이 BTC에서 연 28.9%, 단순 보유 24.3% 대비 근소하게 앞섰다. 같은 전략을 ETH에 적용했을 때는 연 44.4%로 보유 0.5%를 크게 상회했다. 다만 이 전략은 최적화에 사용한 구간에서 연 83%를 기록했으나, 이후 구간에서는 연 29%로 수익률이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백테스트 성과가 실전에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 대표적 사례다.
백테스트 수익률과 실전 수익률은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 출처: Easy-Peasy.AI플랫폼 쪽 데이터도 존재한다. 비츠갭은 2026년 실제 계좌 기준 그리드 봇의 79%가 양(+)의 실현 수익으로 종료됐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봇 개수 기준의 비율일 뿐 수익의 크기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 90일간 봇 여덟 개를 각각 500달러로 운용해 비교한 벤치마크 자료에서는 순수익률이 +6.8%에서 -1.2%까지 벌어졌다는 기록도 있으나, 이런 자료는 제작 주체의 독립성 검증이 어렵다는 점에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수익을 갉아먹는 구조적 비용
봇 매매는 거래 횟수가 많아 수수료 누적이 빠르다. 알트레이디 분석에 따르면 잔액 전체를 주 50회 거래하는 봇은 0.1% 수수료 기준으로 수익과 무관하게 주당 자본의 약 5%를 비용으로 지출하게 된다. 구독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5,000달러 규모 계좌에서 월 99달러짜리 봇을 쓰면 본전을 넘기려고 연 23.8%의 수익률이 필요하다. 여기에 미실현 손익과 자금조달 비용까지 빠진 '봇 카운터 수익'의 착시 문제가 겹친다.
'고수익 보장' 주장은 사기 신호이기도 하다
규제 당국은 AI 봇을 내세운 투자 권유에 대해 명확한 경고를 반복하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소비자 권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AI 기술은 미래나 갑작스러운 시장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 비합리적으로 높거나 보장된 수익을 약속하는 자를 믿지 말라."
CFTC가 공개한 대표 사례는 남아공 출신 코넬리우스 스테인버그의 미러 트레이딩 인터내셔널(MTI)이다. 이 조직은 "월 최소 10% 수익 보장"을 내걸고 전속 봇 매매 프로그램을 내세워 최소 2만3000명에게서 17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가로챘으며, 실제로는 새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폰지 구조였다.
피해 규모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2025년 인터넷 범죄 신고 연례 보고서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사이버 관련 범죄로 인한 피해액이 약 210억 달러에 달했고, 암호화폐 관련 신고는 18만1565건에 110억 달러를 넘겼다. 투자 사기는 전체 사기 피해액의 약 49%를 차지했다. 같은 보고서는 처음으로 AI 관련 항목을 별도 집계해 2만2364건의 신고, 약 8억9300만 달러의 피해를 기록했다.
AI 명칭을 내건 투자 권유는 합법 자동화와 사기가 섞여 있어 검증이 필수다 / 출처: Easy-Peasy.AI국내 연구가 보여주는 것, 그리고 결론
국내 연구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1년 발표된 암호화폐 트레이딩시스템 수익성 분석 연구에서는 기술적 분석 기반 추세 트레이딩 시스템이 분석 기간 동안 비트코인 가격 상승분(약 3227만원)보다 큰 최대 4845만원의 수익을 기록한 반면, 역추세 방식은 손실로 끝났다. 전략과 시장 국면의 적합성이 수익을 좌우한다는 결론으로, 최근 해외 분석과 맞닿는다.
기대치의 기준점도 필요하다. 비트코인은 2024년 1월 약 4만2300달러에서 2025년 말 약 8만7600달러로 상승하며 단순 보유만으로 약 107%의 수익률을 냈다. 절대 수익을 낸 봇이라도 이 기간 보유 성과를 넘기지 못했다면 '장기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기회비용 손실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봇은 방치형 수익 기계가 아니라 전략을 실행하는 도구다. 전략이 현재 시장 국면에 맞는지, 포지션 한도와 손절 규칙이 있는지, 수수료·구독료를 반영한 본전 수익률이 얼마인지, 실물 자금 투입 전 최소 30일 모의 운용을 거쳤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월 10%, 연 200% 같은 '보장' 문구가 들어간 봇 홍보는 규제 당국이 지목한 대표적 사기 신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