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발은 파이썬"이라는 공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AI 시대에는 러스트"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두 문장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층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델을 만지고 실험하는 맨 위층은 파이썬이 계속 맡고, 그 아래에서 데이터를 옮기고 서비스를 돌리고 커널을 지키는 층이 러스트로 갈아타고 있다.
숫자로 보면 파이썬은 여전히 압도적 1위
먼저 균형부터 잡자. TIOBE 인덱스 2026년 10월 기준 파이썬 점유율은 19.23%로 1위다. 2위 C(11.33%)와 격차가 8%포인트 가까이 된다. 러스트는 1.44%로 10위다. 절대 수치만 보면 러스트가 파이썬을 위협한다는 서술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방향은 눈에 띈다. 러스트는 1년 전 16위에서 10위로 올라섰고 점유율도 0.24%포인트 늘었다. 반대로 파이썬은 같은 기간 5.23%포인트 빠졌다. 파이썬의 후퇴라기보다, AI 붐으로 언어 사용처 자체가 넓어지면서 상대 점유율이 희석된 결과로 읽는 시각이 많다.
AI 모델의 학습·실험 코드는 여전히 파이썬이 주류다. 바뀌는 것은 그 아래 인프라 층이다. / 출처: Freerange Stock / 라이선스: FREE머스크의 한 줄: "xAI 코드는 대부분 러스트"
일론 머스크는 올해 초 X의 한 답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러스트는 꽤 훌륭한 언어다. xAI 코드는 대부분 러스트이고, X는 기존 트위터의 스칼라 코드를 러스트로 빠르게 교체하고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회사 차원의 기술 선택을 밝힌 발언이다.
물증도 있다. xAI는 7월 자사 터미널 기반 AI 코딩 에이전트 '그록 빌드(Grok Build)'를 아파치 2.0 라이선스로 전면 공개했다. 공개된 저장소의 러스트 코드는 약 84만4,530줄. 개발자 사이먼 윌리슨이 집계한 수치로, 서드파티에서 가져온 코드는 3% 남짓이었다. 터미널 UI, 마크다운·머메이드 렌더링, 파일 감시, 업로드 큐 같은 구성요소를 자체 구현했다는 뜻이다. 같은 방식으로 집계된 오픈AI의 코덱스 코드베이스가 95만 줄 수준이니, AI 코딩 도구 하나가 상당한 규모의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된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Grok Build는 모델이 아니라 모델을 둘러싼 '하네스', 즉 도구 실행 환경이다. 언어 모델 자체의 학습 코드는 여전히 파이썬과 JAX 계열이 주류다. "그록을 러스트로 만들었다"는 말은 정확히는 제품 코드와 서비스 인프라 쪽에 해당한다.
일론 머스크 xAI 창업자. 2026년 초 X 답글에서 "xAI 코드는 대부분 러스트"라고 밝혔다. / 출처: NARA·DVIDS 공공도메인 아카이브 / 라이선스: FREE마이크로소프트: 러스트가 윈도 커널 안으로
마이크로소프트도 방향은 같다. 2022년 데이비드 웨스턴 부사장이 러스트를 '1급 언어'로 키우겠다며 1,000만 달러 투자를 발표했고, 같은 해 마크 러스니코비치 애저 CTO는 "새 프로젝트는 C/C++로 시작하지 말자"고 공개적으로 적었다.
지금은 계획이 아니라 배포 단계다. 윈도 커널의 win32k 영역 일부가 win32kbase_rs.sys라는 드라이버로 러스트로 동작하고, 커널 코드 약 3만6,000줄과 텍스트 렌더링 엔진 DirectWrite 약 15만2,000줄이 러스트로 옮겨져 실제 제품에 들어가 있다. 애저 쪽에서는 데이터 탐색 엔진의 핵심 로깅 계층이 35만 줄 이상의 러스트로 작성됐고, UEFI 펌웨어 '파티나(Patina)'도 러스트로 새로 썼다.
"C++로 썼다면 권한 상승으로 이어졌을 버그가, 러스트에서는 결정적으로 재현되는 블루스크린으로 끝났다." — 마크 러스니코비치,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CTO
과장도 걸러야 한다. 2025년 말 "2030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C/C++을 전부 없애겠다"는 목표가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당사자는 곧바로 "내 팀의 연구 프로젝트이며 윈도 전략을 새로 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규모 코드베이스를 AI로 옮기는 도구를 만드는 연구 과제라는 설명이다. 실제 현장은 전면 재작성이 아니라 위험도 높은 부품부터 차례로 바꾸는 방식이다.
리눅스 커널은 2025년 12월 러스트를 더 이상 '실험적' 기능으로 분류하지 않기로 했다. / 출처: PICRYL 공공도메인 아카이브 / 라이선스: FREE리눅스 커널: '실험' 딱지를 뗀 날
리눅스 커널은 2022년 6.1 버전부터 러스트를 받아들였지만 줄곧 '실험적'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2025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리눅스 커널 메인테이너 서밋에서 이 딱지를 떼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참석자들의 결론은 명확했다. 러스트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커널의 핵심 구성요소이며, 계속 남는다는 것이다. 이후 관련 문서에서 실험적 기능을 설명하던 절차 자체가 삭제됐다.
규모는 아직 작다. 2025년 4월 기준 커널의 C 코드가 약 3,400만 줄인 반면 러스트는 2만5,000줄 수준으로 1%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의미는 비중이 아니라 지위에 있다. 새 드라이버를 러스트로 쓰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정식 선택지가 됐다는 점이다.
왜 하필 러스트인가
이유는 화려한 성능이 아니라 사고 방식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각자 집계한 수치에 따르면, 대형 시스템 소프트웨어 보안 취약점의 약 70%가 메모리 관리 실수에서 나온다. 러스트는 이 문제를 컴파일 단계에서 막는다. 가비지 컬렉터 없이도 메모리 안전을 확보하기 때문에, 커널이나 실시간 서비스처럼 지연이 곧 장애인 영역에서도 쓸 수 있다.
러스트 공식 로고. 2026년 10월 TIOBE 인덱스에서 10위, 점유율 1.44%를 기록했다. / 출처: rust-lang.org(Rust Foundation) / 라이선스: 유료·저작권 있음(상표, 정보 제공 목적)여기에 AI라는 변수가 하나 더 붙는다. 러스트의 최대 진입 장벽은 학습 곡선이었는데, 코딩 에이전트가 그 부담을 상당 부분 흡수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흥미로운 건 파이썬 생태계 자체가 이미 러스트 부품으로 재편됐다는 점이다. 패키지 관리 도구 uv, 검증 라이브러리 pydantic-core, 허깅페이스의 tokenizers와 safetensors, 러스트로 만든 머신러닝 프레임워크 candle이 대표적이다. 파이썬은 러스트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러스트를 부품으로 쓰고 있다.
결론: 대체가 아니라 분업
현실의 전환 속도는 느리다. 분석 데이터베이스 클릭하우스는 수년간 러스트를 받아들였지만 코드베이스의 98%가 여전히 C++이다. 컴파일 시간, 인력 풀, 기존 코드와의 경계 처리라는 숙제도 남아 있다. RUST가 파이썬을 대체하는 언어는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AI는 파이썬"은 여전히 맞고, "AI 시대의 러스트"도 맞다. 다만 러스트가 차지하는 자리는 모델을 연구하는 책상이 아니라, 그 모델을 안전하게 돌리는 바닥이다. 화려한 자리는 파이썬이 계속 지키고, 사고가 나면 가장 치명적인 자리를 러스트가 맡는 구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