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둘러싼 '버블 논쟁'이 다시 글로벌 증시를 흔들고 있다. 지난달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조차 외국인 매도세를 피하지 못했고, 코스피는 11월 첫 거래일인 3일 하루에만 3.59% 밀렸다. 시장의 시선은 오는 17일(현지시간) 예정된 엔비디아의 분기 실적 발표로 향하고 있다.

'투자 대비 매출'이 논쟁의 핵심

버블론의 근거는 수요가 아니라 회수(투자금 회수)에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6년 약 1조달러에 이어 2027~2030년 추가로 6조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봤다. 문제는 이 투자가 12% 수준의 투자자본수익률(ROIC)을 내려면 2030년까지 8조5,000억달러의 매출이 필요한데, 실제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은 최대 3조6,000억달러에 그칠 것이라는 추산이다. 투자액과 매출 사이의 간극이 그대로 남는다는 얘기다.

매출 증가 속도가 꺾인 점도 논쟁에 힘을 보탠다. 앤트로픽의 분기 매출은 47억→115억→168억달러로 직전 분기 대비 45% 늘었지만 증가율은 둔화하고 있다. 오픈AI의 연 환산 매출이 알려진 700억달러가 아니라 500억달러 수준이라는 보도도 투자심리를 눌렀다.

자금 조달 부담은 논쟁을 '유동성' 문제로 확장시켰다. 오라클은 AI 인프라 재원 마련을 위해 주식과 채권을 각각 100억달러씩 발행하겠다고 밝혔고 주가는 8.76% 급락했다. 투자가 영업현금흐름만으로 감당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2027~2030년 6조달러를 더 넣어도 2030년 데이터센터 매출은 회수에 필요한 8조5,000억달러의 절반에 못 미친다.

반대편엔 '2027년까지 완판'이라는 숫자

실적론의 근거는 메모리 수급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8년을 넘어 2029~2030년까지의 구체적인 수요를 추가로 논의하고 있으며, 사실상 물량이 모두 팔린 상태라고 분석했다. 공급 증가가 제한된 가운데 2027년까지 업황이 좋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빅테크의 투자 의지도 확인됐다. 4대 하이퍼스케일러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하면 잉여현금흐름(FCF)의 마이너스 폭이 확대됐는데도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알파벳은 2026년 자본지출 가이던스를 1,750억~1,850억달러에서 1,800억~1,900억달러로 올렸다.

밸류에이션도 2000년 닷컴 버블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11월 2일 기준 약 5조1,900억달러, 예상 실적 기준 PER은 27배 안팎이다. 이익이 뒷받침되면 극단적 수준은 아니라는 논리다.

11월 3일 코스피 급락, 방아쇠는 오라클이었다

한국 증시는 이 논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10.29포인트(3.59%) 내린 5,648.79에 마감했고, 코스닥은 29.97포인트(4.08%) 하락한 704.39를 기록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조5,000억원대, 5,000억원대 순매도로 지수를 눌렀다. 삼성전자는 4.15% 내린 21만9,500원, SK하이닉스는 5.03% 밀린 139만8,000원에 마감했다.

오라클이 8.76% 빠진 것을 시작으로 AMD(-7.52%), 마이크론(-5.78%), 샌디스크(-6.59%) 등 주요 반도체주가 동반 하락했다. 인텔은 8.8% 추가 하락하며 이틀째 약세를 이어갔다. 일본 키옥시아가 낸드 가격 상승세 둔화를 반영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4분기 전망을 내놓으면서 15.78% 폭락한 점도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조정은 이미 한 달째다. 코스피는 지난달 15일 하루 7.57% 급락해 5,554.22로 밀렸고 이날 양 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외국인은 10월 유가증권시장에서 17조8,345억원을 순매도하며 삼성전자 4조8,156억원, SK하이닉스 9조2,902억원어치를 팔았다. 삼성전자는 10월에 21.8%, SK하이닉스는 28.9% 하락했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는 GPU와 HBM 수요를 끌어올렸지만, 투자 회수 시점을 둘러싼 논쟁도 함께 키웠다. 

17일 엔비디아, 시장이 볼 세 가지

논쟁의 분수령은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17일(현지시간) 미국 증시 마감 후 2027 회계연도 3분기(2026년 8~10월) 실적을 발표하고 오후 5시(동부시간) 컨퍼런스콜을 연다. 시장 컨센서스는 분기 매출 1,080억달러대다.

첫째는 데이터센터 매출과 다음 분기 가이던스다. 버블론이 힘을 얻는 조건은 매출 둔화이지 이익률의 소폭 조정이 아니다. 둘째는 매출총이익률이다. HBM4 등 차세대 메모리 원가가 오르는 국면에서 마진이 얼마나 방어되는지가 관건이다. 셋째는 재고·구매 약정과 차세대 플랫폼의 공급망 언급이다. 다음 사이클 물량을 어느 시점까지 확정했는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2027년 계약 협상력과 직결된다.

HBM4는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으로, 국내 메모리 두 회사의 2027년 실적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국내 밸류체인, 실적은 이미 증명됐다

국내 업체들의 실적 자체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3분기 연결기준 매출 195조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냈다. 전년 동기 대비 782.5% 늘어 국내 기업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처음 넘겼다. SK하이닉스도 3분기 매출 104조6,155억원, 영업이익 83조3,338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매출 100조원을 처음 돌파했다. 영업이익률은 80%에 달했다.

주주환원도 뒤따랐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부터 약 2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에 들어갔다. 3일 급락장에서 '기타 법인'이 4,8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배경에도 자사주 매입이 자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26년 3분기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기업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넘어섰다.

향방은 '가격'과 '금리'에 달렸다

증권가가 제시하는 반등 조건은 수급이다. 4개월 조정으로 쏠림과 과도한 기대가 상당 부분 해소됐고, 7월과 10월 두 차례 실적 발표에서 AI 투자 지속성이 재확인됐다는 평가다. 메모리 가격이 더 오르기 어렵다는 시각에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업황 호조 기간을 2029~2030년으로 길게 제시한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은 금리와 자금 조달에서 온다. 미국 9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3.7%로 예상치(3.6%)를 웃돈 데다, AI 인프라용 회사채 발행 급증으로 조달 비용이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빅테크가 캐펙스 가이던스를 낮추는 순간 메모리 '완판' 논리는 흔들린다.

결국 11월 증시의 방향은 17일 엔비디아의 숫자에서 갈릴 전망이다. 실적이 컨센서스를 웃돌아도 가이던스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재료 소멸' 매물이 나올 수 있고, 가이던스가 유지되면 눌렸던 밸류에이션이 되돌림을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버블 논쟁은 아직 결론이 아니라, 매 분기 실적으로 검증받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