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여객기 기내에서 보조배터리가 타거나 연기가 피어올라 승객이 화상을 입는 사고가 잇따랐다. 10월 4일과 10일 국내 저비용 항공사 운항편에서, 25일에는 홍콩에서 제주로 향하던 외국 항공사 항공편에서 각각 승객 1명이 화상을 입었다. 모두 승무원의 초기 진압으로 큰 불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한 편은 운항이 5시간 넘게 밀렸다.

기내 보조배터리 발화 사고가 잇따르면서 보관 규정과 제품 관리가 함께 주목받고 있다. / 출처: PxHere 

인천~몽골 노선, 착륙 1시간 전 주머니에서 불꽃

가장 먼저 알려진 사고는 10월 4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몽골로 향하던 국내 항공사 여객기에서 발생했다. 목적지 착륙을 한 시간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승객 주머니에 들어 있던 보조배터리가 터지면서 좌석 위쪽으로 불길이 치솟았고, 객실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다.

기내에 있던 승객들은 연기에 기침을 하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고, 불이 난 직후에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승무원이 곧바로 진화에 나서 불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항공기는 예정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운항 일정에 차질은 없었다.

다만 배터리를 소지하고 있던 승객 1명이 화상을 입었다. 항공사 관계자는 해당 승객이 보조배터리를 위탁수하물로 부치거나 머리 위 선반에 두지 않고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규정 위반은 없었다고 밝혔다.

"보조배터리 관련 규정 위반은 없었다" — 항공사 관계자

기내에서 보조배터리를 몸에 지니는 것은 현재 규정이 요구하는 방식이다. 사고가 규정 위반이 아닌 상황에서 났다는 점에서, 보관 위치만으로 발열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청주~제주 국내선, 이륙 전 불…168명 전원 대피

열흘 뒤에는 국내선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0월 10일 오후 7시 30분께 충북 청주국제공항에서 제주로 출발할 예정이던 국내선 여객기가 활주로로 이동하기 직전이었다. 승객이 손에 들고 있던 보조배터리에서 연기와 함께 불이 났다.

옆 좌석 승객이 옷으로 불길을 덮어 1차로 진압했고, 승무원은 배터리를 리튬배터리 화재 진압용 파우치에 넣어 불을 완전히 껐다. 불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연기가 객실에 퍼지면서 탑승객 168명 전원이 기체 밖으로 대피했다. 배터리 주인은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고, 승객과 승무원 10여 명은 두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은 없었다.

기내 연기가 퍼지면 대피까지 시간이 걸린다. 승무원의 초기 진압과 격리 장비가 피해 규모를 가른다. / 출처: Unsplash(PICRYL 경유) 

사고 수습과 안전 점검으로 운항은 크게 지연됐다. 예정 시각은 오후 7시 15분이었지만 실제 출발은 다음 날인 11일 0시 40분, 제주 도착은 오전 1시 40분께였다. 예약 승객 168명 가운데 43명은 탑승을 포기했고, 최종 탑승객은 유아 1명을 포함해 125명으로 줄었다.

항공사는 해당 기체에 바닥 그을음 외에 큰 결함이 없었다며 승무원만 교체한 뒤 같은 항공기를 투입했다. 승객에게는 지연 보상금 3만 원과 교통비 1만 원, 모두 4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불편을 겪은 승객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일부 승객은 사고 이후 2시간 넘게 구체적인 안내를 받지 못했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홍콩발 제주행도 같은 유형…243명 탑승

10월 25일 오전 6시 22분께에는 홍콩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기에서 보조배터리 발열로 연기가 나 승객이 다쳤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항공편의 운항사는 국내 항공사가 아니라 홍콩에 기반을 둔 저비용 항공사다. 당시 기내에는 승객 236명과 승무원 7명 등 모두 243명이 타고 있었다.

좌석 밑 가방에 있던 보조배터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중국 국적의 50대 여성 승객이 이를 꺼내려 했고, 이 과정에서 왼손 엄지손가락에 화상을 입었다. 승무원들은 배터리를 기내 화재 대응용 내열격납가방에 넣고 물에 담그는 방식으로 조치했다. 소방당국은 오전 6시 32분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해 항공기 착륙을 기다렸고, 추가 화재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부상자에게 응급처치를 했다. 부상자는 스스로 병원을 찾겠다며 구급차 이송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좌석 아래 보관은 해당 항공사가 허용하는 위치다. 이 항공사는 보조배터리를 머리 위 선반에 두지 말고 앞좌석 아래 가방이나 좌석 주머니에 두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번 배터리의 용량과 발열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좌석 아래 보관은 일부 항공사가 허용하는 위치다. 다만 발열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 출처: PICRYL(퍼블릭 도메인) 

규정은 강화됐지만…기내 화재 올해만 7건

기내 보조배터리 화재는 제도가 정비된 뒤에도 반복되고 있다. 국내 집계 기준 기내 보조배터리 화재는 2024년 5건에서 2025년 2건으로 줄었다가 올해 7건으로 다시 늘었다. 지난 7월 20일에는 인천공항을 출발해 필리핀 칼리보로 향하던 국내 항공사 객실 통로에서 보조배터리에 불이 붙었다. 승객과 승무원 172명이 타고 있었지만 즉시 진화돼 인명 피해는 없었다.

정부는 2025년 3월 1일부터 보조배터리와 전자담배의 위탁수하물 반입을 금지하고, 기내 선반 대신 직접 소지하거나 좌석 앞 주머니에 두도록 했다. 기내에서 보조배터리를 충전하거나 다른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단자에 테이프를 붙이거나 비닐봉투에 넣어 합선을 막아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우리 기준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기준으로 채택돼 지난 4월 20일부터 보조배터리 1인당 2개 제한과 기내 사용·충전 전면 금지가 시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항공사들은 리콜 대상에 오른 보조배터리 10여 종의 기내 반입도 막고 있다.

규정을 지켜도 사고는 난다…여행자 체크리스트

2025년 1월 28일 김해국제공항에서는 탑승 중이던 국내 항공사 여객기에 불이 나 승객과 승무원 176명이 비상 탈출했고, 기체는 모두 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보조배터리 합선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했다. 몸에 지니고 있어도 배터리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충격으로 손상되면 발열은 시작된다.

여행 성수기에는 기내 반입 물품 검색이 더 엄격해진다. 출발 전 배터리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 출처: Freerange Stock 

여행자 입장에서 확인할 것은 세 가지다. 배터리가 부풀었거나 찌그러졌다면 기내에 들고 타지 않는다. 단자를 절연하고 다른 금속 물체와 섞이지 않게 따로 보관한다.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즉시 승무원에게 알린다.

항공 안전 당국과 항공사가 규정을 계속 손보고 있지만, 기내 반입이 허용된 제품에서도 발열은 일어난다. 결국 남는 과제는 사고를 0건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상 징후를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초기에 격리하느냐다. 10월의 세 사례는 모두 그 대응 속도가 피해 규모를 갈랐다는 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