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의 실적 발표 한 건이 서울 증시를 다시 뒤흔들었다. 30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06.92포인트(3.48%) 내린 5,730.74에 장을 마쳤다. 장중 낙폭은 5%를 넘어섰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프로그램 매매를 잠시 멈추는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됐다. 반등을 시도하던 지수를 끌어내린 것은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3분기 성적표였다.
알파벳 하나에 무너진 오전…장중 5,599까지
이날 코스피는 2.99% 내린 5,760.35로 출발했다. 장 초반에는 5,784.98까지 오르며 전일 급락분을 되돌리는 듯했다. 그러나 오전 10시를 넘기면서 매물이 쏟아졌고, 10시 15분 무렵 지수는 5,639.66까지 밀리며 5.02% 하락했다. 장중 저점은 5,599.42로, 5,900선과 5,800선, 5,700선이 차례로 무너지는 하루였다.
하락 추세를 표현한 그래프 이미지. 이날 코스피는 3.48% 내린 5,730.74로 마감했다. / 출처: Public Domain Pictures / 라이선스: FREE오후 들어 낙폭을 일부 만회했지만 종가 기준으로도 5,700선에 겨우 걸쳤다. 코스닥도 28.85포인트(3.83%) 내린 724.38에 마감하며 700선 초반으로 물러섰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수십조원이 사라진 셈이지만, 시장 참가자들이 주목한 것은 숫자보다 '왜'였다.
올해 28번째 매도 사이드카…11거래일 만에 재발동
오전 10시 4분 55초, 코스피200선물지수가 급락하자 유가증권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프로그램 매도호가의 효력이 5분간 정지되는 조치다. 올해 들어 28번째 발동이며, 지수가 7.57% 빠졌던 이달 15일 이후 11거래일 만이다.
서울 도심 전경. 이날 매도 사이드카는 장 초반부터 발동됐다. / 출처: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FREE사이드카는 선물 급락이 현물 시장의 투매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 장치가 한 해에 28번 작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변동성이 큰 장세가 이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수가 5,700선대까지 내려온 지금, 개인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피로감도 그만큼 크다.
외국인 1조6,170억 '팔자'…개인은 저가 매수
수급은 외국인이 홀로 매도 우위를 보였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6,17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기관과 개인은 각각 7,430억원, 6,210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지수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닥에서는 반대 흐름이 나타났다. 개인이 1,690억원어치를 사들인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70억원, 1,38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낙폭이 컸던 시장으로 개인 자금이 유입된 셈이다.
반도체가 직격탄…삼성전자 3%, SK하이닉스 7%대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 반도체주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는 3.02% 내린 22만5,000원, SK하이닉스는 7.08% 급락한 141만8,000원에 마감했다. 삼성전자우(-5.33%), SK스퀘어(-5.88%), 삼성전기(-7.50%) 등 관련주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0.98%)과 삼성바이오로직스(5.71%)는 상승 마감하며 온도차를 드러냈다.
약세장을 상징하는 이미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6,17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 출처: Public Domain Pictures / 라이선스: FREE간밤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1.38%,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1.42% 하락했다. 알파벳이 12% 넘게 빠졌고 마이크론 등 메모리 관련주도 약세를 나타냈다. 국내 증시가 미국 기술주 흐름에 그대로 연동되는 구조가 이날도 반복된 셈이다.
매출은 늘었는데 현금은 줄었다
알파벳의 3분기 매출은 1,275억8,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5% 늘었다.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주당순이익은 2.12달러로 시장 예상치인 3.02달러를 크게 밑돌았고, 잉여현금흐름은 90억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회사는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내년에는 투자 규모를 큰 폭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로 나가는 돈은 늘어나는데, 그 투자가 매출로 전환되는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이 읽은 것은 성장률이 아니라 '돈이 마르는 속도'였다.
"6월 시작된 조정이 80~90% 진행됐다" —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 지난 27일
다만 윌슨은 버텨온 대형주까지 흔들리면 마지막 추가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며,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다음 달 중순까지 10~15% 더 빠질 가능성도 열어뒀다.
반등의 조건…중간선거와 자금 조달 소화
모건스탠리는 연말 S&P500 목표치로 8,000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 달 3일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고, 인공지능 기업들의 추가 주식·채권 발행 물량이 소화되면 불확실성이 걷힐 수 있다는 논리다. 금리 불확실성이 다소 누그러진 점도 위험자산에 우호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달 15일 7%대 급락에 이어 이날까지 재차 흔들리면서 단기 변동성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적과 주가의 괴리를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는 만큼, 다음 주 빅테크 실적 발표와 외국인 수급 방향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