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미래의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몫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료마다 크게 엇갈린다. 어떤 보고서는 "일자리 네 개 중 하나"라고 말하고, 다른 보고서는 "3.3%"라며 숫자를 확 낮춘다. 두 숫자가 모순처럼 보이는 이유는 '노출'과 '대체'를 같은 말로 읽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와 한국은행의 자료를 나란히 놓으면 윤곽이 더 선명해진다.
AI와 인간이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분담하는 미래 사무실의 개념 이미지 / 출처: Easy-Peasy.AI5년 뒤 전 세계 일자리의 22%가 재편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는 2030년까지의 변화를 1,000여 개 기업, 22개 산업군, 55개 경제권의 응답으로 추산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현재 고용의 14%(1억 7,000만 개), 사라지는 일자리는 8%(9,200만 개)다. 창출과 소멸을 합친 변동은 현재 일자리의 22%, 순증은 7%다.
이 평균값은 공포와 낙관을 함께 흐린다. 응답 기업의 40%는 AI로 자동화할 수 있는 업무에서 인력을 줄이겠다고 했고, 3분의 2는 AI 역량 인재를 새로 뽑겠다고 답했다. 같은 기술이 어떤 자리에서는 감원의 명분이, 어떤 자리에서는 채용의 이유가 된다.
제조 현장의 로봇 자동화. 정형화된 반복 업무일수록 기계 대체가 빠르게 진행된다 / 출처: Easy-Peasy.AI'노출'과 '대체'는 다르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숫자는 국제노동기구(ILO)의 2025년 추정치다. 전 세계 취업자의 약 25%가 생성형 AI에 노출된 직종에 종사한다. 그러나 노출은 '업무의 일부가 AI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ILO가 자동화 위험이 특히 높다고 분류한 직업의 고용 비중은 3.3%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 일자리의 27~28%가 자동화 위험이 높은 직군이라고 본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는 '직업'이 아니라 '업무'를 본다. 현존 기술로 이론상 자동화가 가능한 업무 시간은 60~70%지만, 업무의 절반가량이 자동화되는 시점은 2030~2060년, 중간값은 2045년이다. AI에 닿아 있는 일은 4분의 1, 실제 소멸 위험이 큰 일은 3%대, 나머지는 직업은 남고 업무가 바뀌는 영역이다.
한국은 '연공편향'으로 이미 나타났다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이 2026년 8월 공개한 분석은 논의를 국내 데이터로 끌어내린다. 국민연금 가입자 자료와 경제활동인구조사로 2022년 6월부터 4년을 추적한 결과,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28만 5,000개 줄었다. 이 가운데 26만 8,000개,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사라졌다. 반대로 50대 일자리는 23만 개 늘었는데, 그중 17만 3,000개가 역시 AI 고노출 업종이었다.
업종별로는 정보서비스업 청년 고용이 31.4% 줄었고 출판업 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업 16.6%, 전문서비스업 11.6%가 뒤따랐다. 같은 업종에서 50대 고용은 늘거나 유지됐다. 한국은행은 이를 '연공편향 기술변화'로 규정했다. AI가 초급자의 조사·정리·초안 작성 업무를 흡수하면서 경력자의 판단은 상대적으로 희소해졌다는 해석이다.
"AI만의 직접적인 효과라기보다 기존의 채용·업무방식 변화를 AI가 가속화한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 한국은행, 2026년 8월
연령대별 방향도 갈렸다. 같은 4년 동안 30대 취업자는 27만 6,000개 늘었지만 40대는 12만 6,000개 줄었다. 실업률에서는 학력 역전이 관찰된다. 2022년 11월 이후 대졸 청년의 평균 실업률은 7.0%로, 전문대졸 이하(5.4%)보다 1.6%포인트 높다. 2026년 6월 기준으로는 대졸 이상 7.5%, 고졸 이하 5.2%다. 30~59세에서는 대졸 실업률이 1.6%로 가장 낮아, 같은 역전이 나타나지 않는다.
AI가 '대신한' 업종과 '도운' 업종
한국은행은 활용 방식에서 결정적 차이를 찾았다. AI에 과업 수행 자체를 맡기는 자동화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청년 고용 감소 폭이 컸다. 2022년 11월을 100으로 두면 2026년 4월 자동화 비중 최상위 4분위의 청년 취업자는 85.9로 떨어졌다. 최하위 1분위는 91.4에 그쳤다. 반면 사람이 일하면서 AI를 학습과 검증, 초안 개선에 쓰는 증강 비중별로는 이런 일관된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 증강 최상위 4분위는 90.6으로 오히려 2·3분위보다 완만하게 줄었다.
같은 번역가, 같은 상담원이라도 AI가 산출물을 대신하면 인원이 줄고, 처리 속도를 높이면 같은 인원이 더 많은 일을 맡는다. 도입 여부보다 도입 방식이 일자리의 향방을 갈랐다는 뜻이다.
문서 작성과 정보 처리 중심의 사무직은 AI 노출도가 높은 대표적 직군으로 꼽힌다 / 출처: Easy-Peasy.AI수도권 쏠림, 지역 격차도 벌어졌다
한국은행의 'AI와 지역 노동시장' 보고서는 국내 사례를 한 겹 더 보여준다. 생성형 AI가 본격 확산한 2023년 이후 3년간 생성형 AI 고노출 일자리는 24만 7,000개 늘었는데, 그중 80.8%인 19만 9,000개가 수도권에 몰렸다. 에이전틱 AI 고노출 일자리도 2025년 한 해 10만 5,000개 증가분 가운데 88.3%가 수도권이었다. 수도권은 AI 노출도가 0.1 오르면 고용 증가율이 1.0%포인트 상승하는 관계를 보였지만, 비수도권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지역별 노출도의 결도 다르다. 생성형·에이전틱 AI 노출도는 서울, 세종, 경기 순으로 높았고, 피지컬 AI는 경북, 전남, 충북, 울산 등 비수도권이 앞섰다. 제조업 비중이 큰 지역에 장치·기계조작(12.0%), 단순노무(14.6%)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20대만은 예외였다. 생성형·에이전틱 AI 고노출 일자리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함께 줄어 격차가 뚜렷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지식 축적 중심의 대학교육이 경험을 쌓는 발판이 되지 못한다고 짚었다.
남는 과제는 경력 사다리
숫자가 가리키는 위험은 일자리 총량이 아니다. 초급 업무를 자동화하는 개별 기업의 선택은 합리적이지만,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면 숙련 인력으로 성장할 통로가 좁아진다. 첫 직장에서 경험을 쌓던 사다리가 약해지면, 청년 세대는 나중에 중간 관리자 자리가 비어도 올라갈 발판을 잃는다. 신규 채용의 청년 비중이 2014~2019년 평균 36.9%에서 2024~2026년 29.3%로 낮아진 흐름도 이와 맞물린다.
한국은행은 청년의 AI 활용 역량과 경력자의 경험을 결합한 직업훈련, 채용보조금의 '경력 형성 지원금' 전환, 기술투자와 인재 양성 간 유인 균형 점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WEF는 2030년까지 노동자 100명 중 59명이 재교육이 필요하고, 이 가운데 11명은 재교육 기회를 받지 못할 것으로 본다.
결국 남는 질문
미래 일자리에서 AI의 비중은 기술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에 닿아 있는 일자리는 이미 넓고, 실제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아직 좁다. 그 틈을 넓히느냐 좁히느냐는 기업의 도입 방식과 정책의 재교육 설계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