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 언어를 몰라도 "엑셀 파일을 올리면 견적서를 뽑아주는 페이지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면 AI가 코드를 대신 작성해 주는 시대가 열렸다. AI에 자연어로 원하는 결과를 말해 코드를 만들어 내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대중화되면서, 기업의 시스템 구축과 유지보수를 도맡아 온 SI(시스템통합)와 소프트웨어 개발 외주 업계의 미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단순 개발 수요가 잠식된다는 경고와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기대가 교차하고 있어, 향후 지형은 '도태'가 아니라 '재편'의 향방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AI 코딩 도구를 활용해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개발자 / 출처: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FREE(CC BY-SA 3.0)

자연어만으로 앱을 만드는 시대

바이브 코딩은 복잡한 프로그래밍 문법 없이 자연어로 AI에 명령해 웹사이트, 자동화 시스템, 데이터 분석 도구 등을 구현하는 개발 방식이다. 2025년 초 미국의 저명한 AI 연구자 안드레이 카파시가 이 용어를 대중화한 뒤 불과 1년여 만에 개발 현장의 주류 도구로 자리 잡았다.

확산 속도가 빠르다. 미국 리서치 업체 키홀 소프트웨어가 14개 산업 보고서와 개발자 조사를 집계한 결과(2026년 1~4월 기준), 미국 개발자의 92%가 AI 코딩 도구를 매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대비 340% 증가한 수치다. 새로 작성되는 상용 코드의 41~46%가 AI로 생성되며 연말에는 6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깃허브 코파일럿의 누적 사용자는 2,600만 명, AI 편집기 커서는 미국 상장 대기업 1,000곳 가운데 70%에 도입돼 있다. 바이브 코딩 플랫폼 리플릿의 매출은 2025년 2억4,000만 달러에서 올해 말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대중화 조짐이 뚜렷하다. 교육업체 패스트캠퍼스는 2025년 1월 첫 바이브 코딩 과정을 연 이후 20개 과정으로 확충했고 누적 수강생이 1만 명을 넘겼다. 기획자, 디자이너, 1인 창업가 등 개발 비전공자의 수강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기술을 아는 사람보다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 흐름이다." (이강민 데이원컴퍼니 대표, 데이터넷 보도 인용)

외주 개발의 밥그릇부터 잠식

전문가 없이도 간단한 웹서비스와 업무 자동화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기존에는 외주로 발주되던 소규모 개발 수요가 사내 해결로 흐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사업체 포레스터는 세계 '시민 개발자'를 1,620만 명으로 추산했고, 가트너는 2028년이면 비전공자 개발 인구가 전문 개발자의 4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브 코딩 사용자의 63%가 개발자가 아니라는 조사 결과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글로벌 IT서비스업의 실적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 악센처는 AI가 컨설팅 시장의 수요 구조를 바꾸는 가운데 최근 분기 신규 수주가 2% 감소했고, 올해 주가는 50% 이상 하락했다. 같은 기간 캡제미니와 인포시스 주가도 30% 안팎 내렸다. 글로벌 사모펀드 아폴로글로벌의 고위 관계자는 전문서비스 분야가 소프트웨어에 이어 AI 교란을 받을 차선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AI가 만든 코드의 품질 문제도 함께 커진다. 앞선 집계에 따르면 AI 코딩 도구 도입 후 기업의 버그율이 41% 늘었고,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앱의 91.5%에서 AI 기원의 보안 취약점이 발견됐다. 검증 없이 빠르게 만든 서비스를 뜯어고치는 재구축 비용이 건당 5만~50만 달러에 이른다는 사례도 보고된다.

개발 지식의 대중화로 다양한 직군이 프로그래밍을 접하는 풍경 / 출처: PxHere / 라이선스: FREE(CC0)

국내 SI, 스스로 AI로 갈아타는 중

국내 SW 산업은 올해 생산액 기준 97조8,000억 원, 종사자 47만7,500명, 기업 수는 6만7,000여 개에 이른다(소프트웨어통계포털 기준). 그동안 대형 SI 기업은 공공·금융기관의 시스템 구축을 중심으로 개발 인력을 월 단위로 투입하는 방식의 과금 모델로 성장해 왔다.

업계의 대응은 이미 시작됐다. LG CNS는 AI 코딩 플랫폼의 활용 범위를 코딩 단계에서 분석·설계·테스트·품질진단까지 전 과정으로 확대하고, 명령어만 입력하면 코드 작성부터 테스트와 검증까지 수행하는 코딩 에이전트를 탑재했다. 현대오토에버는 자체 대화형 AI 서비스로 단위 테스트 코드 자동 생성, 코드 리뷰, 오류 분석을 지원한다. SK C&C에서 SK AX로 사명을 바꾼 SK그룹 계열사는 AI 퍼스트 전략 아래 AX 개발 플랫폼을 현장에 적용 중이며, 삼성SDS는 생성형 AI 서비스를 시스템 구현에 활용하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여러 AI 모델로 생성한 코드를 교차 검증해 품질을 끌어올리는 체계를 운영한다.

업계 전문 매체들이 2026년 SI 업계의 방향으로 'AI 역할의 확장'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주·구축·유지보수의 각 단계에 AI를 스스로 녹여내는 기업만 원가 절감과 품질 제고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이다.

개발 전 과정에 AI를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IT서비스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사라지는 일과 남는 일

업계에서는 명확한 기획서와 요구사항만 있으면 AI가 초안 코드를 만드는 환경에서는 단순 구현 인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개발 인력의 투입 규모(인월)에 비례해 대가를 매기던 기존 외주 과금 모델은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가치가 올라가는 영역도 분명하다. 요구사항을 정확히 정의하고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는 아키텍처 역량, AI가 만든 코드의 보안과 품질을 검증하는 능력, 수십 년 된 레거시 시스템을 통합·이전하는 경험, 금융·제조·공공 등 산업별 도메인 지식이 그것이다. 기업의 AI 도입을 조언하는 컨설팅 시장도 세계 기준 2026년 119억 달러에서 2034년 739억 달러로 연평균 25.6%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시장조사업체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츠).

앞서 지적된 품질 리스크는 오히려 SI 기업의 기회로 읽힌다. 가트너가 2028년까지 기업의 AI 코딩 도구 도입률 90%를 예상하는 가운데, 생성된 코드에 테스트 절차와 검증 장치를 갖춰 상용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결국 전문 조직의 몫이기 때문이다.

도태가 아니라 빠른 전환이 관건

결론적으로 단순 구현을 파는 외주 시장은 줄어들 방향이지만, SI 산업 전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진단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국 연구진은 최근 AI 도입이 개발 생산성을 32.6% 개선하는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는데,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동안 비용 때문에 미뤄졌던 개발 수요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산업의 무게중심은 '코드를 짜는 사람'에서 '검증하고 통합하고 운영하는 사람'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AI를 업무 전반에 빠르게 접목하고 직원 재교육과 조직 구조 개편에 나선 SI 업체가 향후 10년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인력 단가에만 의존해 온 중소 개발사업자는 도태 압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경계론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