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사상 최대 규모의 해킹을 당했다. 29일(현지시간) 밤부터 30일 새벽 사이 바이낸스 지갑에서 빠져나간 자산은 회사 자체 추산 6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조4000억원(환율 1340원 기준)이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약 20분. 단일 금융 절도 사건으로는 사상 최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고가 알려지자 비트코인은 6주 만의 최저치인 7만6368달러까지 밀렸고, 이더리움은 3% 넘게 빠진 2178달러로 두 달 만의 저점을 찍었다. 국내 투자자들도 남의 일이 아니다. 업비트와 빗썸은 이날 오전 바이낸스로 코인을 보낼 때 각별히 주의하라는 공지를 잇달아 내걸었다.
바이낸스 해킹 소식에 가상자산 시장 전반이 급락했다. 하락세를 상징하는 일러스트 / 출처: VectorPortal / 라이선스: FREE20분 만에 증발한 63억 달러
바이낸스가 공개한 대응 타임라인을 보면 사고는 29일 밤 9시29분(GMT) "보안 문제를 조사 중"이라는 첫 공지로 드러났다. 33분 뒤인 오후 10시33분 출금 중단이 발표됐고, 11시 6분에는 바이낸스 알파 거래가 멈췄다. 23시 22분 회사는 25억400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동결했다고 밝혔고, 자정을 넘긴 30일 0시 13분 전액 보상과 입출금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실제 자금 이동은 그보다 앞서 벌어졌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아캄은 사고 직후 바이낸스 관련 지갑에서 57억 달러 이상이 유출된 정황을 포착했다. 비트코인 약 15억 달러, 이더리움 약 9억 달러, 테더(USDT)와 USDC 등 스테이블코인 약 14억 달러가 포함됐다. 사고 직전 바이낸스 지갑에 보관된 자산은 약 1440억 달러로, 유출 추정액은 전체의 4% 안팎이다.
블록체인 분석업체들은 해커가 거래소 지갑에 명령을 내려 자금을 자신들이 통제하는 지갑으로 옮기는 방식을 썼다고 분석했다. 미 당국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바이낸스가 연방수사국(FBI)과 비밀경호국(USSS)과 공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거래소로 성장한 바이낸스는 전체 가상자산 시장의 35%가량을 차지한다 입구는 직원 노트북…배후엔 북한?
리처드 텡 바이낸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복잡한 공격"이라며 초기 조사 결과 개발·운영(DevOps)을 맡던 엔지니어의 노트북이 침해된 것이 발단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추가 침투 지점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회사는 "해당 컴퓨터를 통해 전체 공격 경로를 추적 중"이라고 설명했다.
배후로는 북한이 지목되고 있다. TRM랩스와 체이널리시스는 "북한 정예 해킹 조직의 소행이라고 높은 확신을 갖고 판단한다"고 밝혔고, 영국 엘립틱도 같은 결론을 냈다. 수법이 2025년 바이비트에서 15억 달러가 빠져나간 사건과 닮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당시 FBI는 바이비트 사건 배후로 북한을 지목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거의 확실하게 알려진 모든 종류의 절도 가운데 단일 최대 규모다." - 블록체인 분석업체 엘립틱
북한은 그동안 이런 주장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유엔 제네바 대표부와 주중 대사관은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과 아부다비 금융서비스청(FSRA)은 사안을 인지하고 바이낸스와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비트코인 7만6000달러…이미 흔들리던 시장
시장 충격은 즉각적이었다. 비트코인은 장중 7만6368달러까지 밀리며 6주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더리움은 2178달러로 두 달 만의 저점을 찍었다. 바이낸스 자체 토큰 BNB는 24시간 기준 5.3% 하락한 699.54달러에 거래됐다. 상장 가상자산 거래소 주가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다만 이번 사고는 이미 눌려 있던 시장에 얹힌 악재다. 미국 금리 상승과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 둔화로 가상자산은 10월 초 사상 최고치(12만6000달러) 대비 30% 넘게 빠진 상태였다. 해시키그룹의 팀 선 선임연구원은 "위험 선호가 더 위축되고, 중앙화 거래소에 맡긴 자산의 안전성을 다시 따져보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의 크리스티아누 벤트리첼리 부사장은 "최종 손실 규모와 거래 상대방, 자산 회수 여부, 그리고 이 사건이 생태계 전반의 신뢰 상실로 번지는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비트코인은 해킹 소식이 전해진 뒤 7만600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 출처: Public Domain Pictures 국내도 즉시 반응했다. 업비트는 30일 오전 7시46분 공지에서 바이낸스에서 보안 사고와 일부 자산 탈취 정황이 확인됐다며, 바이낸스로 가상자산을 출금할 때 각별히 유의하라고 안내했다. 빗썸 등 다른 주요 거래소도 비슷한 내용의 공지를 내고 이용자 자산은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거래소 보관 자산의 구조적 위험을 다시 확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영국 정보보안업체 ESET의 제이크 무어 글로벌 보안자문은 해커들이 자금을 수천 차례 옮기며 추적을 흐리려 할 것이라며, 환전 등 '출구'가 나타날 때가 수사기관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에게는 거래소에 장기 보관하지 말고 하드웨어 지갑 등 오프라인 보관 수단을 쓰라는 조언이 나온다. 출금 재개 직후 몰리는 피싱 문자와 가짜 사이트도 주의 대상이다.
사상 최대 해킹은 업계 전반의 신뢰 문제로 번지고 있다 / 출처: VectorPortal전액 보상 약속…관건은 '출금 재개'
바이낸스는 사고 금액과 같은 63억4000만 달러의 자체 자금을 확보해 두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50억 달러는 피해를 본 바로 그 토큰으로 이미 보유 중이고, 나머지는 여러 경로에서 매입 중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동결된 자산 약 30억 달러가 더해진다. 테더가 15억7000만 달러, 서클이 8억 달러, 리플이 2억 달러,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이 2700만 달러 규모를 묶었다.
회사는 48시간 안에 출금 서비스를 재개하겠다고 예고했다. 바이낸스는 2025년 연말 기준 등록 이용자 3억3500만 명, 수탁 자산 1628억 달러를 기록했다. 창업자 창펑자오(CZ)는 회사가 보유한 스페이스X 지분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다고 밝히며 재무 여력을 강조했다.
의문도 남는다. 과거 FTX 붕괴 직전에도 비슷한 안심 메시지가 나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X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모지를 남기자 CZ는 "지금은 조롱할 때가 아니다"라고 반응했다.
이번 사건의 파장은 세 가지 지표로 갈릴 전망이다. 예고대로 48시간 안에 출금이 재개되는지, 동결되지 않은 나머지 33억 달러를 얼마나 되찾는지, 그리고 주요국 규제당국이 거래소 준비금 공시를 어느 수준까지 요구하는지다.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150건 가까운 공격으로 29억 달러가 탈취된 것으로 집계된 만큼, 업계의 보안 비용 부담은 당분간 커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