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루에 나누는 대화 가운데 가장 많은 상대는 누구일까. 가족도, 직장 동료도 아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문제는 그 대화의 상당 부분이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쓰지 않는 말투라는 데 있다. 실수를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문장은 대개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이고, 일이 틀어졌을 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혼잣말은 "역시 나는 안 돼"다.

심리학은 이 현상을 '자기대화(self-talk)' 또는 '내적 발화(inner speech)'라고 부른다. 계획을 세우고, 감정을 정리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과정에 자기대화가 관여한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축적돼 왔다. 중요한 것은 이 대화의 내용이 단순한 기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말로 자신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수행의 결과와 그 뒤의 정서가 달라진다.

하루의 생각을 종이 위에 옮겨 적는 일은 자기대화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한 번의 실수가 성격이 되는 순간

자기비판적인 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업무에서 실수를 하면 "역시 나는 꼼꼼하지 못해"가 되고, 관계가 어긋나면 "나는 사람을 다루는 게 서툴러"가 된다. 처음에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평가였던 문장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성격에 대한 결론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굳어진 문장은 이후의 판단을 미리 정해놓는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시도하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자기비판의 습관은 정서 건강과도 연결된다. 자기비판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불안과 우울,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는 여러 차례 보고돼 왔다. 반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온화한 사람은 실패를 겪은 뒤에도 다시 시도하는 경향이 높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생긴다. 자기비판이 곧 반성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둘은 묻는 질문이 다르다. 반성은 "무엇이 잘못됐고,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자기비판은 "왜 나는 이런 사람인가"를 묻는다. 전자는 행동을 고치지만, 후자는 사람을 깎는다.

"자기자비는 실수나 부족함, 혹은 외부의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을 때 자신을 지지해주는 태도다." —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의 정의

칭찬보다 중요한 것은 함부로 대하지 않기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자비를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한다. 어려울 때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자기친절', 힘든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보편적 인간성', 지금의 감정을 과장 없이 바라보는 '마음챙김'이다. 여기에 자기판단과 고립감, 감정에 대한 과잉동일시를 줄이는 과정이 함께 따라붙는다.

이 정의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기'가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잘못을 부정하지도, 부족한 부분을 덮지도 않는다. 다만 그 사실을 확인하는 태도가 무례하지 않을 뿐이다. 자기자비가 나태나 자기합리화로 이어진다는 속설도 연구에서는 지지되지 않는다. 자신을 온화하게 대하는 사람이 오히려 실패 뒤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반복해서 확인됐다.

자기자비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손길이다. 타인에게 건네는 배려를 나에게도 허용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국내 연구가 확인한 '말투의 효과'

국내 연구에서도 자기대화의 유형에 따른 차이가 관찰된다. 자기격려형 자기대화를 사용한 집단은 자기비판형 자기대화를 사용한 집단보다 과제 수행 수준이 더 높아졌고, 과제에 대한 자신감과 긍정 정서도 더 크게 나타났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스스로에게 어떤 문장을 반복하느냐가 실제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기대화를 살핀 연구들도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이 원하는 자기대화의 종류와 받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곧 자기대화는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습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힘든 날의 혼잣말은 대개 창문에 맺힌 물방울처럼 흐릿하다. 그 문장을 종이에 적어보면 비로소 형태가 보인다.

'괜찮아' 한마디가 힘을 가지려면

자기대화를 바꾸는 출발점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다. 우선 걸리는 문장을 그대로 적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소리 없이 돌던 말을 종이 위에 옮기면, 그것이 사실인지 습관인지 구분할 여지가 생긴다. 다음으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꾼다. "왜 나는 이럴까"에서 "무엇이 문제였고, 다음엔 무엇을 다르게 할까"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방향이 달라진다.

세 번째는 같은 상황을 겪은 친구에게 건넬 법한 문장을 떠올리는 것이다. 실수한 동료에게 "역시 넌 안 돼"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그 문장을 나에게만 허용할 이유도 없다. 다만 위로가 회피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괜찮아" 뒤에는 "그래도 이 부분은 다음에 이렇게 해보자"는 구체적인 한 걸음이 따라붙어야 한다.

정직함도 필요하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그 과정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비판을 걷어낸 자리에 남는 것이 정확한 자기 인식이다.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길다. 그 시간의 말투가 결국 나라는 사람을 설명한다.

평생 함께 살 사람에게 필요한 예의

인간관계의 질은 대화의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 원리는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평생 함께 살아갈 상대인 나 자신과의 관계 역시,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 매일 반복되는 한 문장이 쌓여 어느새 자기 인식의 바탕이 되고, 그 인식 위에서 선택과 행동이 이뤄진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것이 된다. 나는 지금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가. 남에게는 쉽게 건네는 배려를 나에게는 왜 아끼고 있는가. 답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혼잣말 한 줄에서 시작된다. 잘못했을 때 인정하고, 부족함을 바라보되 무례하지 않게. 그 정도의 예의만 지켜도 평생의 동반자 관계는 조금씩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