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방송사에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남긴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10월 29일 오후 10시 30분경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7세. 사단법인 제로캠프는 고인이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빠르게 나빠졌다고 전했다. 1959년 연극 무대에서 출발해 2026년까지 67년을 연기자로 살아온 긴 여정의 마침표였다.

배우 최불암. 2026년 10월 29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인천 금곡동의 소년, 무대에 서다

고인은 1939년 6월 15일 인천부 금곡정, 지금의 인천 제물포구 금창동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서라벌예술초급대학 연극영화학과에서 연기를 배웠고, 1959년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햄릿'이 그의 첫 자리였다. 이후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들어가 2년 남짓 무대를 지켰다.

텔레비전과의 인연은 1966년 MBC 라디오 드라마에서 시작됐다. 이듬해인 1967년 서울중앙방송 공채 탤런트로 정식 입문해 드라마 '수양대군'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었고, 1969년 MBC가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면서 특채 탤런트로 자리를 옮겼다. 무대에서 다져진 발성과 호흡은 이후 수십 년간 그의 목소리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주는 바탕이 됐다.

박 반장과 김 회장, 두 개의 이름

대중에게 각인된 두 개의 이름이 있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18년간 이어진 MBC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 그리고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을 이어간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이다. 한 사람의 얼굴이 형사와 농촌 마을의 어른이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떠받친 셈이다.

'수사반장'은 당시로서는 드문 장수 형사 드라마로 자리 잡았고, 극 중 반장의 입버릇은 유행어처럼 번졌다. '전원일기'에서는 권위적이지 않은 가장으로서 시골 마을의 온기를 대표했다. 특유의 '파하~' 하는 너털웃음은 두 캐릭터를 관통하는 그의 표정이었다. 1990년대에는 이 웃음소리를 내세운 유머집까지 나와 인기를 끌었다.

고인의 별세는 30일 오전 주요 방송과 통신을 통해 일제히 전해졌다.

카메라 밖에서도 '반장'으로 불렸다

고인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연기 밖의 행보다. 1970년대부터 경찰의 명예직을 맡아 여러 차례 직급이 올라갔고, 2024년에는 경찰청 명예치안정감에 위촉됐다. '수사반장'이라는 캐릭터가 실제 제복 조직과 맺은 오랜 인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동·청소년을 향한 활동도 길었다. 1980년대부터 아동 복지기관 후원회 활동을 이어왔고, 2007년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 회장을 맡았다. 소년원 출신 청소년의 사회 복귀를 돕는 사단법인 제로캠프에서는 이사장으로 재임했다. 이 같은 공로로 1998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정치에도 발을 들였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4년간 국회의원으로 일했고,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서울 영등포을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정계에서 물러났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방송으로 복귀해 배우로서의 본업에 집중했다.

노년의 자리, '한국인의 밥상'

2000년대 이후에도 활동 반경은 좁아지지 않았다. 드라마 '궁', '식객', '라이프 온 마스'와 2024년 '수사반장 1958' 등에 출연하며 세대를 넘어 얼굴을 알렸다. 2011년부터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 진행을 맡아 14년간 전국의 식탁과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특유의 낮고 진중한 목소리는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간판이 됐다.

변화는 2025년 3월 찾아왔다.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고, 이후 재활과 건강 관리에 전념해 왔다. 프로그램은 그가 물러난 자리를 다른 진행자에게 넘겼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밥상'의 목소리로 기억됐다.

고인은 60여 년간 드라마와 교양 프로그램을 오가며 대중과 만났다. 
"입원 치료를 받던 중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 유족 측 설명을 전한 제로캠프 발표 요지

마지막 인사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30일 오전 10시부터 조문객을 맞고 있다. 장례는 고인이 전국후원회 회장으로 몸담았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맡았고,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와 아들 최동녘, 딸 최동비가 있다.

고인이 남긴 기록은 숫자로도 길다. 최장수 드라마 두 편을 합치면 40년, 교양 프로그램 진행만 14년이다. 무대와 화면, 그리고 의회와 복지 현장까지 옮겨 다녔지만 그를 설명하는 한 마디는 결국 시청자가 붙여준 호칭으로 돌아온다. '국민 아버지'라는 이름이다.

남겨진 것

1960년대 흑백 화면에서 시작된 그의 연기는 컬러 드라마를 거쳐 2020년대의 리메이크 작품까지 이어졌다. 세대가 바뀌어도 같은 얼굴이 같은 방식으로 신뢰를 얻는 일은 흔치 않다. '수사반장 1958'에 카메오로 등장했을 때 젊은 시청자들이 보인 반응은 그 신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장례 일정과 조문 가능 시간은 유족과 장례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인의 빈소를 찾으려는 이들은 장례식장 측 안내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67년을 카메라 앞에 섰던 배우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평생 지켜온 소탈한 웃음으로 정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