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의 월 구독료를 두고 한 번쯤 고민해 본 창작자라면 눈여겨볼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브랜든 토머스가 이끄는 팀이 포토샵과 프리미어 프로, 일러스트레이터 등 어도비의 간판 응용프로그램 7종과 사실상 같은 기능을 하는 무료 오픈소스 앱 묶음 '아트크래프트(ArtCraft)'를 공개했다. 코드는 전부 러스트(Rust)로 처음부터 다시 작성됐고, 작성 과정에는 앤스로픽의 생성형 AI 모델 클로드 오푸스 5.5가 투입됐다고 개발팀은 밝혔다.
포토샵부터 아크로뱃까지, 7종이 한꺼번에 풀렸다
아트크래프트가 내놓은 앱은 이름부터 어도비 제품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포토샵 대응 포토크래프트, 일러스트레이터 대응 벡터크래프트, 프리미어 프로 대응 필름크래프트, 라이트룸 대응 라이트크래프트, 애프터 이펙트 대응 이펙트크래프트, 인디자인 대응 디자인크래프트, 아크로뱃 대응 피디에프크래프트다. 모두 MIT 또는 아파치 2.0 라이선스로 배포되며, 맥OS와 윈도우, 리눅스에서 네이티브로 실행된다. 어도비가 아예 지원하지 않는 리눅스용 설치 파일까지 제공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설치 파일 크기는 앱당 50MB 안팎으로 수 GB에 달하는 원본과 대비된다. 옛 C++ 코드와 중첩된 프레임워크를 걷어내고 러스트로 새로 쓴 결과라는 설명이다. 라인업도 빠르게 늘어 공식 사이트에는 워드·엑셀·파워포인트 대응 앱과 사운드크래프트, 캐드크래프트까지 13종이 이름을 올렸고, 오토캐드와 솔리드웍스도 다음 목표로 언급됐다.
아트크래프트의 이미지 편집 앱 포토크래프트 화면. 메뉴 구성과 패널 배치가 포토샵과 거의 동일하다. / 출처: 아트크래프트출발점은 '해지 수수료'…"어도비를 미워하게 됐다"
토머스는 15년 경력의 개발자로 결제 기업 스퀘어에서 엔지니어로 일했고, 음성 합성 서비스로 알려진 스토리텔러닷에이아이의 최고경영자를 지냈다. 그가 어도비를 정면으로 겨냥한 이유는 단순하다. 연간 약정 상품을 중간에 해지할 때 물리는 수수료를 여러 차례 부담한 끝에 어도비에 반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공개 커뮤니티에서 "해지 수수료에 여러 번 발목이 잡혔고, 그 뒤로 어도비를 미워하게 됐다"고 적었다(번역 인용).
이런 불만은 특정 개인의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어도비는 지난 3월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구독 해지 관련 소송에서 1억5천만 달러 규모의 합의에 서명했다. 민사 벌금 7천5백만 달러와 고객 대상 무료 서비스 7천5백만 달러로 구성된 이 합의에서 어도비는 위법 행위를 부인했다. 거대 기업의 구독 관행에 쌓인 창작자들의 불만이 신생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로고. 깃허브 스타 4만 개…AI가 앱을 직접 조작한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개발자들이 코드에 남기는 '스타'는 출시 11일 만에 포토크래프트에서 4만4천 개를 넘었고, 필름크래프트도 스타 1만600개와 포크 4천200개를 기록했다. 포토크래프트 코드를 그대로 가져다 다른 편집기를 만드는 사례까지 나왔다.
눈에 띄는 차별점은 AI 에이전트가 앱을 직접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필름크래프트의 모든 기능은 명령줄과 제어 채널, MCP 서버로도 실행되며 노출된 명령이 650개를 넘는다. 사용자가 클로드에게 열려 있는 문서의 주소를 바꾸고 인쇄 규격에 맞춰 다시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하면 AI가 실제로 앱을 조작해 파일을 고친다. 색보정처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대신 처리하는 방식이며, 포토크래프트와 이펙트크래프트도 같은 구조다.
아트크래프트의 13개 앱은 모두 러스트로 작성됐다. 겉모습은 어도비 제품과 비슷하지만 실행 코드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개발팀의 주장이다. 직접 써 본 평가는 "아직 아니다"
관심만큼 실사용 평가는 냉정하다. 외신과 개발자 커뮤니티의 테스트 결과를 종합하면 기본 인터페이스와 단축키, 레이어 구조까지 포토샵·프리미어 프로와 거의 같지만 세부 동작에서 차이가 크다. 이미지 편집 앱에서는 색보정 필터의 미리보기가 작동하지 않고 피사체 자동 선택과 콘텐츠 인식 채우기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 관리 앱은 카메라 제조사 색 프로파일과 렌즈 프로파일을 지원하지 않고, 선명도 보정에서 아티팩트가 생기는 문제가 보고됐다.
영상 편집 앱의 제약은 더 뚜렷하다. 10비트 4:2:2 영상 재생을 지원하지 않아 카메라 원본을 그대로 편집할 수 없고, 4K 소재를 위한 최적화 미디어 생성 기능도 없다. 프리미어 프로의 프로젝트 파일은 열 수 없고 외부 플러그인도 호스팅하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스스로 밝힌 자기 평가는 프리미어 프로 26.5.2 대비 기능 폭 약 86%, 실무 투입 가능 수준은 약 56%다. 일부 앱은 정식 출시 전 단계인 알파 버전으로 표시돼 있다.
클린룸 주장, 그리고 아직 답이 없는 법적 쟁점
핵심 쟁점은 코드를 어디서 가져왔느냐다. 개발팀은 어도비 소프트웨어를 뜯어보고 되돌리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공개된 국제 표준 문서를 근거로 처음부터 새로 작성한 이른바 '클린룸'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어도비 코드와 아이콘, 프리셋은 포함되지 않았고, 어도비 앱 내부 파일을 읽거나 복사하지 말라는 규칙을 기여자용 문서에 명시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주장은 제3자가 독립적으로 검증한 바 없고, AI 모델이 어떤 자료를 학습했는지도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 법조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저작권보다 다른 곳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능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지만 어도비 이용약관은 자사 제품의 복제 시도를 금지하고 있고, 메뉴와 단축키, 화면 구성이 워낙 비슷해 소비자 혼동을 이유로 한 트레이드 드레스 분쟁이나 특허 침해가 문제 될 여지도 남아 있다. 어도비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무료 앱, 무엇으로 굴러가나
수익 구조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앱 자체는 무료지만, 아트크래프트는 앱 안에서 AI 이미지·영상 생성에 쓰는 크레딧을 월 구독 형태로 판매한다. 요금제는 10달러, 35달러, 60달러 세 가지로 알려졌다. 구독 없이 크레딧만 따로 사거나, 외부 서비스에서 생성한 결과물을 앱으로 가져오는 방법도 지원된다. '구독 없는 창작 도구'를 내세운 프로젝트가 별도의 구독 매출로 개발비를 대는 셈이다.
보안 우려도 따른다. 서명되지 않은 설치 파일을 실행하는 방식이어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개발자의 프로그램을 개인 컴퓨터에 설치하는 위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설명과 실제 구현의 거리가 크다"는 비판과 지켜보자는 반응이 맞서고 있다.
전망
아트크래프트가 어도비를 당장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색 정확도와 호환성, 플러그인 생태계, 안정성이 중요한 실무 환경에서는 아직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다만 코드가 전면 공개돼 있고 기여자들이 AI 에이전트로 개발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AI가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을 얼마나 낮추는지, 그 결과물이 어디까지 합법의 경계 안에 머무는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