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 상장을 앞둔 클로드(Claude) 개발사 앤트로픽이 회사 공시에 'AI가 스스로 연구 속도를 끌어올리는 시점이 임박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직접 적어 넣었다. 11월 2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된 수정 상장신고서(S-1/A)에는 자사 책임적 확장 정책(RSP)이 정의한 'AI에 기인한 극적 가속화' 기준에 가까운 시일 내 도달할 수 있다는 문구가 담겼다. 상장을 앞둔 기업 공시에서 AI 자체 가속화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고, 이어진 독립 감사 결과와 겹치면서 업계 파장이 커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앤트로픽 사무실 방문 모습 / 출처: Flickr 

외부 감사 "개선 속도 1.9배, 80%는 AI 기인"

비영리 AI 평가 단체 METR(모델 평가·위협 연구소)은 지난 8월 12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11주간 앤트로픽 내부 데이터와 직원 인터뷰를 바탕으로 감사를 진행했고, 지난 5일(현지시각)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 단체는 보수를 받지 않았으며, 미국 AP통신 보도를 포함해 여러 경로로 핵심 내용이 전해졌다.

감사 결과 앤트로픽 모델의 벤치마크 점수 상승 속도는 2025년 10월을 기점으로 약 1.9배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 평가 지표 기준 연간 상승폭이 약 15점에서 29점으로 커졌고, 과거 2년치 진전을 1년 만에 해낸 셈이다. METR은 학습용 컴퓨트 증가를 원인으로 배제했으며, 가속의 약 80%는 연구 과정에서 AI를 도구로 활용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추정치의 불확실 범위는 1.3배에서 3배까지 넓고, 경쟁사 모델까지 포함해 업계 전체로 환산하면 가속 배율이 1.4배 정도로 낮아진다. 앤트로픽이 2025년까지 뒤처져 있던 것이 반영된 추격 효과일 가능성도 함께 제기됐다. 내부 직원들은 최신 내부 모델 사용으로 생산성이 열두 배가량 높아졌다고 자가 평가했지만, 감사 측은 이를 대표성이 약한 '매우 느슨한 증거'로 분류했다.

공개 보고서는 실제보다 느리게 기술

논란은 공개 자료의 표현 수위에서 터졌다. 앤트로픽이 8월에 내놓은 위험 보고서는 가속 배율이 '2배 미만'이라고 서술했으나, METR이 비공개 원본을 검토한 결과 내부 추정치는 1.97배에 달했고 기준 초과가 이미 지난 7월 15일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 단체는 공개된 보고서가 가속 수준과 불확실성을 전반적으로 축소해 담았다고 평가했다.

앤트로픽은 비공개 정보에 대해 단독 수정 권한을 행사해 감사 보고서의 핵심 근거 상당 부분을 삭제 처리했다. 공동창업자이자 책임 확장 책임자인 샘 맥캔들리시는 "AI가 우리 연구를 가속하고 있지만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말하기는 어렵다"고 반응하며, 가속 원인의 세부 공개는 경쟁사에 개발 로드맵을 넘겨주는 행위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속도를 늦추자는 호소와의 간극

달리오 애모데리 최고경영자는 지난 9월 12일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업계에 속도 조절을 호소한 바 있다.

"AI 모델의 능력을 개선하는 속도를 늦추자" — 다리오 애모데리, 9월 12일 에세이

그러나 감사 보고서는 컴퓨트나 데이터 제약 같은 병목 요소를 찾지 못했고, 향후 12개월 동안 가속이 이어질 '유의미한 위험'을 남겨뒀다. METR은 급격한 재가속이 6개월 안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보며 위험 등급 상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상장 앞둔 실적, 매출 급등과 거대 컴퓨트 약정

수정 신고서에는 3분기 실적도 반영됐다. 1~9월 누적 매출은 332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200% 늘었고, 3분기 단독 매출은 약 170억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순손실은 1,040억 달러인데 대부분은 전환사채와 파생부채의 공정가치 변동에서 비롯된 회계적 손실이다. 컴퓨트·인프라 비용은 9개월간 144억 달러 늘었고, 회사가 약정한 지출 규모는 약 8,954억 달러에 이른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나스닥 마켓사이트 전경 / 출처: Flickr 

상장 일정은 이르면 9일부터 이어지는 주간에 투자자 로드쇼가 열리고 16일이 속한 주에 첫 거래가 시작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잠재 투자자들이 미국 내 'AI 반발' 여론과 데이터센터 부담이 상장 일정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앞서 오픈AI는 6월 비공개 상장 신청을 마친 뒤 내년 상장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앤트로픽이 대형 AI 기업 공개의 첫 문을 여는 셈이다.

AI 학습에 투입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인프라 / 출처: All About Industries 

한국 정책과 시장에 주는 시사점

올해 1월 세계 최초로 AI기본법을 전면 시행한 한국에는 이번 감사가 이중의 시사점을 준다. AI 스스로가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는 국면에서는 기업의 자체 안전 약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 그리고 외부 감사와 공시 투명성이 신뢰의 핵심 장치가 된다는 점이다. 고영향 AI 안전성 의무를 둔 국내 제도 환경에서 이번 사례는 기업 자율 감사와 법적 의무 감사의 접점을 논의하는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상장이 완료되면 앤트로픽은 분기마다 실적과 안전 정책을 동시에 시장에 설명해야 한다. '가속화 문턱'을 넘었는지 여부는 향후 회사 공시와 외부 감사에서 계속 확인해야 할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