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제조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차세대 기술 '4F²'를 적용한 6세대 D램 공정 플랫폼의 엔지니어링 샘플 검증을 마쳤다고 밝히고, 고객사 검증 이후 시장 수요에 맞춰 점진적인 양산에 나서겠다고 공식화했다. 선폭 미세화가 한계에 부딪힌 D램 시장에서 판을 바꿀 수 있는 선언이라는 평가와 함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켜온 기술 우위가 흔들리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메모리 업계에 집중되고 있다.
셀 면적 33% 줄이는 '4F²', 왜 주목받나
D램에서 'F²'는 메모리 셀 하나가 차지하는 면적을 최소 선폭(F)의 제곱으로 표기한 지표다. 현재 주력 공정이 대체로 6F² 구조인 가운데, CXMT가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4F² 구조는 같은 실리콘 면적에서 셀 크기를 33%가량 줄일 수 있다. 면적이 줄어든 만큼 동일한 크기의 칩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선폭을 계속 줄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집적도를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대안 기술로 꼽힌다.
4F² 구조를 실현하려면 트랜지스터 채널을 눕혀 놓는 기존 방식 대신 세워서 배치하는 수직 채널 트랜지스터(VCT)와 같은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공정 자체가 달라지는 만큼 기존 생산 라인을 그대로 활용할 수 없고, 초기 수율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D램의 구조와 발전 과정을 정리한 인포그래픽'세계 최초' 카드 잇따라 내놓는 CXMT
CXMT는 지난달 차오칸위 총재가 상하이에서 연말까지 4F² 기술을 적용한 서버용 DDR5 RDIMM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고, 최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앞서 언급한 공정 플랫폼의 샘플 검증 완료를 공개했다. 여기에 앞으로 두 달 안에 제한적으로 HBM3E(5세대 고대역폭메모리)를 생산하겠다는 계획과 차세대 저전력 메모리 LPDDR6 양산 공식화가 이어졌다. LPDDR6는 샤오미의 폴더블 스마트폰에 처음 탑재됐다.
시장 성과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집계에 따르면 CXMT의 글로벌 D램 매출 점유율은 2023년 1%에 미치지 못했으나 2025년 약 7.7%로 커졌고, 올해 2분기에는 9.5%까지 올라 세계 4위 자리에 올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39.4%, SK하이닉스는 24.9%, 마이크론은 22.4%를 기록했다. CXMT는 지난여름 상하이 증시 과학기술판에 상장해 약 295억 위안(약 6조7000억원)을 조달하며 설비 투자 재원까지 확보한 상태다.
CXMT가 연말 공개를 예고한 것은 서버용 DDR5 RDIMM 등 고사양 서버 메모리다 삼성전자는 2028년 양산 목표, SK하이닉스는 6F²와 병행 개발
국내 기업들도 4F² 관련 연구에는 한 발 앞서 있었다. 삼성전자는 약 5년 전부터 관련 기술을 연구해왔고, 2028년까지 4F² 기반 차세대 D램 양산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송재혁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달 열린 반도체 산업 전시회에서 4F² 기술의 준비 상황을 묻자 "열심히 준비 중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현재 주력인 6F²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4F² 또는 3D D램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CXMT의 연내 상용화 계획에 대해서는 "기술 구현과 실제 상용화 시점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미국 마이크론은 4F²를 적용해도 집적도 개선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상용화를 포기하고 3D D램으로 전략을 옮긴 것으로 알려져, 기업별 노선 차이도 뚜렷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 미세화와 셀 구조 전환 기술을 오랜 기간 연구해왔다 '종이 호랑이' 평가와 과도한 안심 사이
다만 양산 선언이 곧바로 기술 격차의 역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 투자은행 로젠블랫은 CXMT의 4F² 위협을 '종이 호랑이' 수준으로 평가하며, 현재 시장 수요를 고려하면 당장 이 기술을 활용해도 경제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CXMT가 제품 사양과 수율을 공개하지 않은 점을 들어, 연말 제품 공개를 삼성전자의 2028년 양산 목표와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증권가의 지적도 나온다.
"메모리 경쟁력은 단순 신공정 개발이 아닌 안정적인 대량 양산과 수율 확보, 고객사 인증 능력으로 결정된다" — KB증권 보고서
물리적 걸림돌도 남아 있다. 4F² 양산에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필수적인데,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가 CXMT의 장비 확보에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HBM3E의 현재 수율은 20~30% 수준으로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수율 부담에도 생산을 강행하는 배경에는 내수 시장 중심이라면 낮은 수율을 일정 부분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설명한다.
인하대 이규복 특임교수(전 반도체공학회장)는 "중국은 기술 성과나 시제품이 나오면 우선 발표하지만, 한국은 양산에 가까워졌을 때 공개하는 경향이 있다"며 발표 문화의 차이를 고려해 성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경쟁력 판가름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대량 양산 여부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양산의 성패가 경쟁 구도를 가를 것
결국 관전 포인트는 '발표'에서 '양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양산 단계에서 수율과 원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며, 4F² 상용화 시점에 맞춰 D램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CXMT가 연말 서버용 D램 공개와 제한적 HBM 생산 등 다음 카드를 잇따라 꺼내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4F²·3D D램 개발 일정과 수율 지표가 향후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읽는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