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걷는 해상 트레킹, 고군산섬잇길의 탄생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앞바다에 펼쳐진 고군산군도는 16개의 유인도와 40여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의 군락이다. 한때 배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낙도들이었던 이 섬들은 이제 두 발로 걸어서 넘나들 수 있는 길을 갖게 되었다. 바로 말도에서 출발해 보농도, 명도, 광대도, 방축도까지 다섯 개의 섬을 네 개의 해상 인도교로 잇는 고군산섬잇길이다. 서해의 탁 트인 조망 아래 바다 위에 놓인 인도교를 따라 걷는 이 코스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해상 트레킹 경험으로 꼽히며, 군산시가 추진하는 K-관광섬 육성사업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은 고군산섬잇길을 "바다 위를 두 발로 걸으며 다섯 개의 섬을 하나로 잇는 국내 독보적인 해상 트레킹 코스"로 소개하며, 섬과 섬 사이의 인도교를 따라 걷는 동안 서해의 탁 트인 조망과 거친 파도, 섬 특유의 자연 경관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총 연장 약 8.6km 규모의 이 코스는 섬 내부의 산책로와 해상 인도교가 하나로 이어진 형태다. 인도교 구간만 합치면 약 1.4km에 달하는데, 다리 위에서는 바다가 좌우로 트이기 때문에 걷는 내내 개방감이 유지된다. 종주 방향은 말도에서 방축도로, 혹은 그 반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배편과 연계해 방향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과거 일부 안내 자료에서는 코스 거리가 7.2km로 표기되기도 했으나, 최근 군산시 안내와 현장 종주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약 8.6km가 실제 완주 거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섬잇길 주변의 기존 산책로까지 포함하면 전체 도보 네트워크가 14km 안팎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다섯 섬, 네 개의 인도교: 코스 구성과 거리
고군산섬잇길의 뼈대는 네 개의 해상 인도교다. 제1교는 말도와 보농도를 잇는 308m 구간, 제2교는 보농도와 명도를 잇는 410m 구간, 제3교는 명도와 광대도를 잇는 555m 구간, 제4교는 광대도와 방축도를 잇는 83m 구간이다. 네 교량 중 제3교가 가장 길어 해상 구간을 걷는 쾌감이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스 전체를 종주할 때 걷는 거리는 약 8.6km 안팎이다. 순수 보행 시간은 3시간 수준이고 사진 촬영과 휴식을 포함하면 5시간에서 5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탐방자들의 경험담이 모여 있다. 섬잇길 전체를 걷는 종주 코스 외에도 각 섬을 중심으로 당일 왕복하는 소구간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 체력과 일정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말도에서 보농도와 명도를 왕복하는 동선은 당일 코스로 인기가 높고, 방축도와 광대도를 잇는 짧은 구간은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난이도로 알려져 있다. 명도에는 삶문화센터 앞 선착장에서 출발해 해발 68m의 구렁이전망대를 중심으로 오진여 체험전망대까지 이어지는 4.4km 규모의 가족 코스도 별도로 운영된다.
다만 섬잇길은 평지가 거의 없고 해발 100m가 넘는 섬 산을 오르내리는 구간이 이어지는 중상급 난이도의 트레킹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해안 절벽과 정상을 오르내리는 계단 구간이 많아 거리 대비 소요 시간이 길어지며, 노약자 동반 시 소구간 코스를 선택하는 편이 안전하다. 코스 곳곳에는 쉼터와 화장실, 야간조명 같은 편의시설이 단계적으로 갖추어지고 있다.
9년의 공사가 완성한 보행자 전용 해상 인프라
고군산섬잇길의 인도교는 2017년 착공되어 단계적으로 개통되어 왔다. 먼저 방축도와 광대도를 잇는 제4교가 개통되었고, 이후 말도에서 보농도와 명도를 거치는 구간이 차례로 시범 개통되는 방식으로 길이 확장되었다. 마지막 퍼즐이던 명도와 광대도 사이의 제3교까지 완성되면서 2026년 8월 8일을 기해 다섯 개 섬을 잇는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되었다. 약 9년에 걸친 공사가 끝나고 비로소 배 없이는 이동할 수 없었던 섬들 하나하나가 하나의 도보 네트워크로 묶인 것이다.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고군산군도의 해상 풍경. 출처: 군산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주목할 점은 네 개의 인도교가 모두 국내 기업의 손으로 시공되었다는 사실이다. 외해의 거친 조건 속에서 섬과 섬을 잇는 보행자 전용 교량을 건설하는 일은 국내에서 선례가 드문 과제였고, 그 결과물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형태의 연속 해상 트레킹 코스로 완성되었다. 교량은 단순히 섬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통로가 아니라, 바다 위를 걷는 사람에게 360도 조망을 제공하는 관광 인프라이자 콘텐츠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해상 교통 시설과 구별된다. 개통 이후 코스 곳곳에 쉼터와 화장실, 야간조명 등 보행 편의시설이 순차적으로 보강되면서 본격적인 관광 인프라로 다듬어지고 있다.
이 사업에는 뚜렷한 정책적 배경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K-관광섬' 공모에 군산시의 말도, 명도, 방축도가 선정되면서 국비 50억 원을 포함한 총사업비 115억 원 규모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K-관광섬 육성사업은 청정 섬에 관광과 K-컬처를 융합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매력적인 섬을 특화하는 사업으로, 섬마을 주민학교와 캠핑장, 청년예술인 놀이터 같은 관광시설 운영과 축제 개최가 함께 추진되고 있다. 섬잇길은 이 프로그램의 교통축이자 대표 콘텐츠 역할을 맡고 있다.
세계 최장 방조제에서 시작되는 길: 연결도로와 여객선
고군산군도로의 접근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육상 접근이다. 새만금사업으로 조성된 고군산군도 연결도로는 총연장 33.9km로 기네스월드레코드가 공인한 세계 최장 방조제 구간을 포함한다. 길이 33.9km의 새만금방조제는 세계 최장 방조제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방조제보다 약 1.4km 더 길며, 2010년 4월 준공을 거쳐 2017년 고군산군도 연결도로가 전면 개통되면서 신시도 등 일부 섬은 육지와 차량으로 연결되었다. 선유도와 장자도 방면으로 차량을 몰고 들어가 주차한 뒤 여객선을 환승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둘째는 여객선이다. 말도, 명도, 방축도 등 섬잇길의 핵심 섬은 여전히 배로 들어가는 섬이며, 승선권은 한국해운조합 여객선 예매 홈페이지를 통해 입도와 출도 각각 미리 예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장자도에서 방축도, 명도, 말도를 잇는 구간의 운임은 한 구간 7,700원 안팎이며, 매달 25일경 다음 달 티켓이 오픈되면 주말 배편이 빠르게 매진되는 편이다. 군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는 섬 지역별 여객선 시간표와 결항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관리도와 방축도, 명도 방면 여객선 안내 전화(063-464-4614)도 공개되어 있다.
주차는 섬잇길 방문객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현실적 과제다. 선유도 쪽 주차장은 대형 차량 수용이 가능한 규모이지만 주말과 공휴일에는 만차가 빈번하므로, 이른 도착이나 대중교통 연계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배 시간표가 코스 진행 리듬을 결정하므로 출발 전 입도 배편과 출도 배편을 먼저 확정해 두는 것이 트레킹 계획의 기본이다.
걷는 즐거움: 고군산8경, 등대, 그리고 갯벌
코스의 출발점이자 거점 명소는 말도이다. 1909년에 점등된 이래 100년 넘게 서해의 길을 밝혀 온 말도 등대는 섬잇길 트레킹의 대표적인 포인트로 꼽힌다. 보농도와 명도는 상대적으로 작고 조용한 섬이라 인도교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과 섬의 정취가 대비를 이루며, 광대도에서 방축도로 넘어가는 마지막 구간은 서해의 낙조를 감상하기 좋은 동선으로 알려져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관광정보에 따르면 고군산군도는 명사십리, 선유낙조, 평사낙안, 망주폭포, 장자어화, 월영단풍, 삼도귀범, 무산십이봉을 고군산8경으로 꼽을 정도로 주변 경관이 수려한 천혜의 해상공원이다. 특히 방축도와 명도, 말도의 12개 봉우리가 무사들이 도열한 듯하다는 무산십이봉은 섬잇길이 지나는 세 섬의 경관을 압축해 보여주는 경관 자원이다.
고군산군도 일대에는 섬잇길 외에도 오래전부터 조성된 도보 코스가 자리하고 있다. 군산시가 운영하는 고군산길 트레킹 코스 중 신시도를 도는 구불 7길은 총거리 12.3km에 소요시간 305분으로, 세계 최장 방조제가 만들어낸 갯벌과 저수지, 해안 트랙과 전망쉼터, 미니해수욕장과 몽동해수욕장, 월영봉과 월영재를 거치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선유도와 무녀도, 대장도를 잇는 구불 8길은 총거리 21.2km 규모로 오룡묘와 천사날개 벽화, 대봉전망대, 몽돌해수욕장, 초분공원과 장자대교를 지나며 갯벌체험과 서해의 낙조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섬잇길과 이 같은 기존 코스를 조합하면 이틀 이상의 완성형 도보 여행 일정을 짤 수 있다. 섬잇길과 연계해 선유도의 옥돌해변과 몽돌해수욕장 같은 해변 명소를 함께 둘러보는 동선도 인기가 높다.
고군산군도 선유도 옥돌해변의 해안 풍경. 출처: 군산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고군산길 구불 8길 코스 지도: 선유도, 무녀도, 대장도를 잇는 도보 코스. 출처: 군산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스마트 관광 인프라: 온라인 예매와 디지털 안내
고군산섬잇길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행 준비와 이동을 뒷받침하는 디지털 인프라다. 여객선 승선권은 한국해운조합의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통해 지역과 도착지명으로 검색해 예약할 수 있으며, 말도와 명도, 방축도 등 군산 소속 섬들이 예매 목록에 그대로 노출된다. 입도와 출도 승선권을 각각 미리 예매해 두는 절차 덕분에 트레킹 일정이 배편에 맞춰 정밀하게 짜일 수 있다. 군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섬 지역별 여객선 시간표와 결항 정보, 도보여행 코스 정보를 상시 제공하고, 군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스탬프 투어 플랫폼도 별도로 운영되어 섬 방문 인증 문화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방축도와 말도를 중심으로 한 해설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코스의 자연과 역사에 대한 전문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온라인 예매, 실시간 운항 정보, 해설 프로그램이 결합되면서 고군산섬잇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예약에서 귀환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스마트 관광 상품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다만 현장 안내 표지와 주차 인프라는 아직 보완이 필요하다는 탐방자 지적이 이어지고 있어, 소프트 인프라와 하드 인프라의 균형이 남은 과제로 꼽힌다.
머무는 섬으로: 체류형 관광과 지역 경제
최근에는 섬잇길을 이용한 섬 백패킹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말도, 명도, 방축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1박2일 코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군산시는 2026년 9월 2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수도권 출발의 K-관광섬 고군산섬잇길 1박2일 체류형 관광상품을 총 10회 운영하며, 회차당 최소 15명 규모로 참가자를 모집해 섬잇길 트레킹에 섬별 숙박을 연계했다. 1인 27만9,000원에 판매되는 이 상품은 말도부터 방축도까지 다섯 섬 종주와 섬 숙박을 하나의 일정으로 묶은 체류형 관광 모델이다. 섬에서 자고 걷고 다시 섬으로 넘어가는 일정은 단순 통과 관광을 머무는 관광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의 실천이기도 하다.
섬 마을의 숙박과 체험 상품, 주민 참여형 관광시설이 관광 상품 안에 녹아 들면서 섬잇길은 인프라 사업을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하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개통 이후 방문객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언론의 생방송 프로그램에도 소개되는 등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갔고, 여객선 예매 경쟁과 주차 포화라는 성장통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방문 전 체크리스트
고군산섬잇길 트레킹을 준비할 때 확인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입도 섬과 출도 섬을 정한 뒤 한국해운조합 여객선 예매 사이트에서 승선권을 각각 예매한다.
- 여객선은 기상과 운항 상태에 따라 결항될 수 있으므로 당일 운항 여부를 반드시 확인한다.
- 코스 소요시간은 휴식 포함 5시간 안팎이므로 마지막 출도 배편 시간을 역산해 출발 시각을 정한다.
- 주말과 공휴일에는 주차와 배편이 동시에 포화 상태에 이르므로 이른 출발이 안전하다.
- 해상 인도교는 바람이 강한 날 체감 난이도가 올라가므로 방풍 웨어와 충분한 수분을 준비한다.
고군산길 구불 7길 코스 지도: 신시도 방조제와 섬 산책로가 이어지는 구성. 출처: 군산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섬을 잇는 길이 만드는 지역의 미래
고군산섬잇길은 교량과 산책로, 여객선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결합된 복합 인프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배에만 의존하던 섬 관광을 도보 네트워크로 확장하면서 방문자의 체류 시간과 이동 동선이 늘어났고, 이는 섬 마을 상권과 숙박, 체험 상품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하게 만든다. 편의시설 보완과 주차 문제 해결, 안전 관리 같은 과제는 앞으로 꾸준히 다뤄져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세계 최장 방조제에서 출발해 다섯 개의 섬을 잇는 8.6km의 길은 군산이 바다를 관광 자원으로 재편한 대표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바다 위를 걸으며 다섯 개의 섬을 넘는 경험은 앞으로도 섬잇길을 찾는 이들에게 다른 어디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