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비용을 두 배로 물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백악관이 공개한 지난 2일(현지시간) 기자단 질의응답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하기 싫다면 나는 상관없다. 그냥 더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곧 서명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리겠다고 전해라”고 덧붙였다. 다만 무엇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워싱턴과 서울이 알래스카 사업의 확정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알래스카를 가로지르는 파이프라인. 알래스카 LNG 사업은 노스슬로프 가스전과 남부 해안을 잇는 대형 인프라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 출처: Pixnio / 라이선스: FREE

500억 달러, 무엇을 두고 다투나

논쟁의 중심에는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미국 본토 남부 해안까지 끌어와 액화한 뒤 아시아 시장에 수출하는 사업이 있다. 약 1,300km 길이의 가스관을 새로 깔아야 하고, 액화 플랜트와 수출 터미널까지 함께 짓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사업비는 450억~540억 달러 수준으로 거론된다. 한국 돈으로는 대략 60조~70조원대에 이르는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2,000억 달러 패키지의 일부로 이 사업에 540억 달러가 투입된다고 발표했다.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와 상무부·에너지부 장관 등이 함께 배석한 자리였다. 반면 양국이 내놓은 공동 팩트시트에는 투자 금액이 적히지 않았고, 사업 추진은 ‘상업적 합리성’과 양국의 국내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문구만 담겼다.

미국은 ‘성사’, 한국은 ‘검토 중’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다음 날인 10월 1일, 사업 참여 여부는 재무적 타당성과 법적 절차 준수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이후에도 일관되게 ‘검토 단계’라는 선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최근 이 사업의 투자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따져볼 외부 자문사 선정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법인 등에 제안요청서를 보내는 방식으로 검증 작업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 사업을 두고 지난해 국회에서 “하이 리스크 사업”이라고 표현했다. 올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사업이 성공하고 우리가 LNG를 가져올 수 있다면 전략적 가치는 분명히 있다”면서도 상업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전제를 다시 강조했다. 사업성과 안보·공급망 이익을 저울질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들이 하기 싫다면 나는 상관없다. 그냥 더 청구하겠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 10월 2일 백악관 기자단 질의응답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 참여를 앞서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앞서 나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발표 내용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알래스카 노스슬로프 일대의 석유·가스 생산 설비. 이 지역 가스를 남부 해안으로 운송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 출처: 미국 에너지부 국립에너지기술연구소(NETL) / 라이선스: FREE

“계속 좋아진다”던 발표, 확인 절차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과의 투자 협의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며 84억 달러 규모의 석유회수증진(EOR) 사업을 추가로 언급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양국이 합의한 문건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산업 당국은 통상 채널을 통해 미국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한 상태다. 발표와 합의문 사이의 간극이 반복되면서, 알래스카 건을 둘러싼 신뢰 문제로 번지는 모양새다.

사업 자체의 난이도도 만만치 않다. 영구동토층이 넓게 분포한 지역을 관통하는 가스관 공사는 지반 변화 예측이 어려워 공기와 비용이 늘어날 위험이 크다. 국내 건설업계에서도 중동 등지의 대형 플랜트 경험과는 결이 다른 극한 환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기 공급 계약으로 현금 흐름을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 매력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LNG 운반선. 알래스카 사업은 액화된 가스를 아시아 시장으로 실어 나르는 해상 물류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 출처: 한화그룹 공식 이미지 / 라이선스: 유료·저작권 있음

관세 카드와 3,500억 달러 패키지

‘두 배’ 발언의 배경에는 관세가 있다. 한국은 지난해 한미 통상 협상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구상을 내놓았고, 그중 1,500억 달러는 조선, 2,000억 달러는 전략적 투자로 배분됐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한국산 제품에 매기던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다. 알래스카 LNG는 이 2,000억 달러 항목의 상징적 사업으로 분류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두 배’가 관세율 인상을 뜻한다면, 15%가 30%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다만 백악관은 구체적인 대상을 확인해 주지 않았다. 국내외 매체들은 관세 인상 가능성을 유력하게 해석하면서도, 투자 분담금 자체를 두 배로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한국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방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업의 수익성을 좌우할 공급 계약 확보 측면에서는 대만의 움직임이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이 700억~800억 달러 규모의 LNG 구매를 약속했고, 이는 향후 20년간 사업 생산량의 30%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만의 지분 투자 44억 달러도 함께 언급됐다. 장기 구매처가 확보될수록 한국의 참여 명분도 달라질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알래스카 사업 참여를 대미 투자의 성과로 부각해 왔다. / 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DVIDS 공공 아카이브 / 라이선스: FREE

남은 변수는 ‘사업성’과 ‘국내 절차’

정부가 강조하는 두 가지 기준은 결국 숫자 싸움이다. 가스관 건설비와 액화 비용, 장기 판매 단가, 환율과 금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회 보고와 관련 법령상 절차도 남아 있다. 대규모 대외 투자에 대한 국내 정치적 검증이 생략되기 어렵다는 점도 변수다.

미국 정치 일정도 압박의 강도를 키우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국·일본·대만의 대미 투자 약속을 잇달아 성과로 제시하고 있다. 협상 상대국 입장에서는 발표와 확정 사이의 시차가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구조다.

한국으로서는 서두르지 않되 늦지도 않은 판단이 필요하다. 사업성 검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조건을 확정하면 위험을 떠안을 수 있고, 검토가 길어지면 관세·통상 압박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알래스카 LNG는 이제 단순한 에너지 사업이 아니라 한미 통상 협상의 신뢰와 정치 일정이 맞물린 시험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