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제조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수율이 20~30%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HBM3E(5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생산에 나서기로 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CXMT는 HBM3E 샘플을 중국 AI 반도체 설계업체 여러 곳에 보냈고, 향후 두 달 안에 제한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시장 선두인 SK하이닉스의 수율이 70% 안팎으로 알려진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뒤처진 수치다. 앞서 4F² 차세대 D램 양산 추진을 공식화한 CXMT의 속도전 뒤에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출 규제라는 구조적 제약이 놓여 있다. 규제와 장비 조달 관점에서 짚어본다.

수율 20~30%…선두 업체와 격차

CXMT는 표준 설계 제품과 수율 개선을 위해 일부 설계를 바꾼 개선 버전 등 두 종류의 HBM3E를 고객사에 공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테스트 결과 성능은 SK하이닉스의 HBM3E보다 한 세대 이전인 HBM3에 가까웠다. 수율이 낮은 만큼 생산 단가도 높아, 해외 경쟁사의 동급 제품보다 비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HBM은 D램 다이 여러 장을 실리콘 관통 전극(TSV)으로 수직 적층하는 구조로, 적층 단계마다 불량이 누적되면 완제품 전체가 폐기된다. 수율은 대량 생산 경험이 쌓여야 개선된다. CXMT는 2024년부터 HBM 기술을 내부적으로 개발해 온 것으로 알려졌고, 업계 보도에 따르면 내년에는 현재 상용화된 최고 단수인 12단 HBM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양산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중국 내 첨단 메모리 공급난이 있다. 미국은 2024년 12월 중국향 일부 HBM 제품 수출 통제를 강화했고, 중국 업체들은 이후 비공식 경로로 제품을 구하며 몇 배 높은 가격을 치르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달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 중국 AI 칩 업체들이 메모리 비용 부담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20~50% 인상했다고 보도했다.

HBM은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적층해 대역폭을 높이는 메모리다 

EUV 없는 미세화, DUV 멀티패터닝의 한계

CXMT의 미세화 속도전은 EUV 장비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미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2019년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해 세계 EUV 시장을 독점하는 ASML의 대중국 수출 허가 갱신을 막았고, 중국은 2019년 이후 EUV 장비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 10월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에 대한 포괄적 수출통제를 도입했고, 네덜란드는 2023년 9월 고성능 침지식 DUV 장비에 수출 허가제를 적용했다. 2024년 9월에는 한 단계 낮은 사양의 침지식 DUV까지 허가 대상에 포함됐고, 같은 해 12월 미국은 HBM 통제를 포함한 반도체 장비 규제 패키지를 내놓았다.

그 대안으로 중국 업계가 택한 조합이 DUV 액침 노광과 멀티패터닝이다. CXMT는 지난 9월 중국 허페이에서 열린 행사에서 메모리 셀의 핵심 구조 간격을 11.95나노미터까지 줄인 5세대 D램 공정을 개발해 양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칩 수가 이전 세대보다 최소 50% 늘었고, 24기가비트 저전력 D램(LPDDR5X) 2종이 이 공정에서 양산될 예정이다. 다만 전체 칩 수 기준이라 실제 수율 개선과는 별개라는 평가도 나온다.

멀티패터닝의 구조적 한계도 뚜렷하다. 하나의 패턴을 둘 이상으로 나눠 노광과 식각을 반복하는 방식이라 공정 단계와 생산 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패턴을 수 나노미터 단위로 정확히 겹쳐야 하는 만큼 오차가 누적되면 수율 하락과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분석 기관에 따르면 중국에 깔린 첨단 액침 DUV 스캐너는 약 296대로, 규제 이전에 확보한 기기를 돌려가며 쓰는 상황이다.

중국은 2019년 이후 EUV 노광장비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4F²는 'EUV 우회 설계'

앞서 공식화한 4F² 양산 추진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CXMT가 연내 4F² 기반 DDR5 생산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EUV 노광장비 접근 제한을 지목했다. 선폭을 계속 깎는 대신 메모리 셀 구조를 수직으로 세워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담는 우회로다.

주목할 점은 이 경로가 중국만의 발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수직 게이트 기반 4F² 구조와 웨이퍼 본딩을 적용하는 차세대 D램 로드맵을 공개했고, 삼성전자는 2028년까지 4F² D램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두 업체는 언제든 EUV를 투입할 수 있는 선택지가 남아 있다. 그 선택지가 빠진 CXMT에게 4F²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차세대 고숫값(High-NA) EUV 노광장비 — 첨단 노광장비는 여전히 중국 공급이 차단돼 있다 

장비 자급 속도전과 생산능력의 벽

미국 제재는 장비 업그레이드에도 작동하고 있다. 지난 2월 보도에 따르면 CXMT의 D램 생산량은 SK하이닉스의 절반 수준이고, 미국 규제로 장비 업그레이드가 막혀 생산능력 확대가 제한된 것으로 분석됐다. CXMT는 지난여름 상하이 증시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설비 투자를 늘리며 장비 자급률을 높이고 있다.

자체 노광장비 개발도 병행되고 있다. 중국 국영 배경의 기업이 침지식 DUV 노광장비 양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지난 7월 나오면서 글로벌 노광장비 1위 ASML의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다만 중국 최대 노광장비 업체인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의 주력 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 대비 한 세대 이상 뒤처졌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규제 강화 여부가 다음 변수

CXMT는 현재 미국 엔티티 리스트에 등재돼 있지 않다. 로이터는 지난 6월 미 행정부가 관계부처 심의에서 딥시크와 CXMT 등 100여 개 중국 기업의 엔티티 리스트 등재를 이미 승인했음에도 미중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공개를 보류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이후 엔티티 리스트에 신규 기업을 추가하지 않고 있다. CXMT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 국방부로부터 중국 군 관련 기업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의회 쪽 움직임도 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지난 4월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DUV 액침 노광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이미 설치된 장비의 유지보수 서비스에도 허가를 요구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CXMT가 명시돼 있으며 아직 시행 단계는 아니다. 설치된 장비의 서비스까지 규제 대상에 넣는 방향이라 기존 생산라인 유지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엔티티 리스트는 '두더지 잡기'와 같아서 계속 두더지를 때려야 한다" — 필립 럭 CSIS 글로벌 공급망 전문가(연합뉴스 보도 인용)

골드만삭스는 CXMT가 중국 HBM 수요의 40%를 충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말 4F² 서버용 DDR5 공개와 두 달 안에 시작될 HBM3E 제한 생산이 곧 다음 검증 관문이다. 수율과 원가, 고객사 인증에서 선두 업체와의 격차가 실질적으로 좁혀지는지, 그리고 미국의 규제 강화가 언제 어디까지 가는지가 향후 메모리 시장 판도를 가를 두 축이다.